한시

강촌(江村)-두보(杜甫)

푸른물 2010. 9. 29. 05:41

강촌(江村)-두보(杜甫)

강촌-두보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유) : 맑은 강물 한 굽이 마을을 감싸 흐르고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 강촌의 긴 여름, 일마다 한가롭다
自去自來堂上燕(자거자래당상연) : 저대로 날아가고 날아오는 지붕 위의 제비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 서로 친하여 서로 가까이하는 것, 물 속의 갈매기
老妻畵紙爲碁局(노처화지위기국) :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 어린 아이는 바늘 두들겨 낚시바늘 만드네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 병 많은 이몸, 필요한 건 오직 약물이니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 하찮은 나에게 이것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할까


<감상1>-오세주

제1,2 구절을 보자
淸江一曲抱村流 : 맑은 강물 한 굽이 마을을 감싸 흐르고
長夏江村事事幽 : 강촌의 긴 여름, 일마다 한가롭다

우선 공간적 배경이 설정된다. 맑은 강물(淸江) 한굽이(一曲)가 감싸 흐르는(抱村流) 강 마을이다.
다음으로 시간적 배경과 심리적 배경이 덧붙여져 구체화된다. 게절은 긴 여름날(長夏)이다. 그리고 그 강촌 마을의 분위기는 "모든 일이 한가하기만 하다(事事幽)"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는 사람과 생물이 사는 무대인 대자연의 평화로움을 나타내준다. 자연은 평화롭고 자연스럽고 따뜻하여 살 만한 곳이라는 작가의 심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3,4 구절을 보자

自去自來堂上燕 : 저대로 날아가고 날아오는 지붕 위의 제비
相親相近水中鷗 : 서로 친하여 서로 가까이하는 것, 물 속의 갈매기

여기서는, 설정된 평화로운 강 마을에 사는 제비와 갈매기의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삶이 표현된다. 즉, “저대로 오가는(自去自來) 제비”와 “서로 친하여 가까이하는(相親相近) 갈매기”의 삶이 묘사된다

결국, 대자연 속에서 제 습성대로 꾸미지 않고 살아가는 제비와 갈매기를 통해서 인간의 인위적이고 의도적이고 문화적인 속박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문제삼는 작가의 가치관이 나타난다.

5,6 구절을 보자

老妻畵紙爲碁局(노처화지위기국) :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 어린 아이는 바늘 두들겨 낚시바늘 만드네

여기서는 마을 안에서 욕심 없이 살아가는 부류의 사람들이 묘사된다. 곧, 늙은 아내(老妻)와 어린 아이(稚子)의 삶이다. 늙은 아내는 그저 늙은 남편을 위하여 “종이에 바둑판을 그려주고(畵紙爲碁局)” 있고, 아이는 “못쓰는 바늘을 구부려 물고기를 잡는 낚시 바늘을 만들고 있는 것(敲針作釣鉤)”이다.

결국, 아이와 늙은 아내, 그들은 여름의 농번기에 일하려 밭에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생업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롭고 한가하게 천성을 다치지 않고 갈매기나 제비처럼 한가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 쫓기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별다른 욕심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인 줄 아는 것이다. 시골의 아이와 늙은 아낙은 글을 배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학문을 모른다. 이념의 굴레에 얽매이지도 않고, 탐욕의 포로나 권력의 시녀도 아닌 것이다. 그저 자연스런 인간일 뿐이다. 그저 부모형제로부터 인간의 도리를 배워 그대로 따라 사는 삶이다. 그들은 자연인인 것이다.

7,8 구절을 보자

多病所須唯藥物 : 병 많으니 필요한 건 오직 약물이니
微軀此外更何求 : 하찮은 이 몸 이것 외에 무엇을 바랄까

여기서는 비로소 작가 자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작가는 시인이다. 당시의 지식인인 셈이다. 그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그는 아는 것이다.
그는 학문도 했고 벼슬살이도 했다. 그는 국가적 차원의 그리고 인간적 차원의 당위성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가야할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되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근심과 고민이 많은 것이다. 나라 걱정, 백성 걱정 그리고 가족 걱정이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그러한 일을 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마음을 끊이고 속을 태우고 많은 걱정을 했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임금을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 외쳐보고 호소도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 소리 없는 메아리였던 것이다. 답답하였다.

그래서 그는 술을 마셨다. 떠돌았다. 세월은 무심히 너무 흘러버린 것이다. 그는 이제 늙었다. 그래서 그는 병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늙고 병든 몸(多病)” 그리고 “미천한 몸(微軀)” 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제 그의 이상을 포기하는 정서를 보인다. “오직 필요한 것은 약물(所須唯藥物)”이고 “그 외의 겻은 필요하지 않다(此外更何求)”고 말하고 있다. 극히 평범한 생활인의 목소리다.

이제 종합적으로 생각해보자

1,2,3,4 구절에서 신이 창조한 자연인 강가의 마을에서, 갈매기와 제비는 평화롭고 자유롭게 제 천성대로 살고 있다.

5,6 구에서 평화로운 강 마을에서 세상의 온갖 이념적 구속에 물들지 않은 천진한 아이와 늙은 노파는 인간의 본성으로 한가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7,8 구에서, 잘못된 세상을 알리려는 작가의 고독한 지성이 이제 꺼져가는 촛불처럼 마지막 숨을 쉬는 애처로운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두보는 평생이 답답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구원의 방법으로 시를 지었다. 시를 통하여 하고 싶은 말을, 마음의 속내를 보이고 토해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피맺힌 자신의 절규에 대답 없는 그 시대 사람을 향해서 공연히 외치기보다는, 차라리 시를 지어서 후대의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인생은 이런 것이고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왜 인생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냐고 말이다.

이 시는 시대를 아파하고 좌절한 그 시대 지성인의 사회적 생명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