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 김기택 (1957 ~ )
수박을 우적우적 씹어삼키고 난 그의 입에서
대여섯 개의 수박씨가 차례로 튀어나왔다.
벙어리 장갑처럼 뭉툭한 혀는
이빨 사이에서 힘차게 으깨지는 수박 속에서
정확하게 씨를 골라내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저 작은 입으로 갈비와 맥주와 냉면이 들어가고
수박까지 남김없이 들어간 것은
입구멍 안에 어둡게 숨어 있는 혀 탓일 것이다.
먹을 만큼 먹어 더 먹을 마음이 없어진 혀는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주는 두툼한 손바닥처럼
이와 입술을 오랫동안 정성껏 핥아주었다.
(하략)
수박을 먹으면서 ‘혀’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지? 늘 몸에 있지만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혀라는 존재,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이며 배부른데도 억지로 억지로 더 맛을 보게 하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말하느라 힘든 우리들의 혀, 시란 이런 것이다. 깊이 깊이 관찰하고 생각했을 때 흘러나오는 것, 수박 한 덩이도 그냥 먹지 않을 일이다. 깊이 깊이 그 검은 씨를 들여다보라.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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