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의 표정 -길상호(1973~ )
냉동실을 여는 순간
봉인된 채 몸이 굳은 한 무리의 시체들,
내가 보아온 사람들의 어떤 죽음보다
더 아픈 얼굴로 무장한 멸치들,
염이라도 해줘야 풀릴 것 같은
표정을 하나씩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눈두덩보다 튀어나온 눈들이 모두 하얗다
시력을 잃고서야 비로소 어둠이 걷힌 눈,
저 눈이 바라보는 건
과거일까 미래일까
펄펄 끓는 가마솥을 마지막으로
저승으로 헤엄쳐 도망갔으니 너의 생은
뜨거웠을까 차가웠을까 (후략)
당신은 멸치의 눈을 들여다보았는지? 그 눈이 들여다보는 것을 함께 들여다보았는지? 당신의 생을 거기 대입시킬 수 있었는지? 그것의 답은 무엇이었는지? 한 마리의 멸치가 안고 있는 시의 언어 속에 당신을 잠시 대입해 보자. 거기 답안지엔 정답이 쓰여 있을지 모른다. 삶은 ‘펄펄 끓는 가마솥’처럼 뜨거웠으나, 항상 뜨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삶은 ‘저승’처럼 차가울 것이나 항상 차갑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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