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하면 되리라 -박재삼(1933~1997)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 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 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사랑하는 사람과 이 시를 읽으면 제격이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인생을 살아온 그 각각의 길을, 그러나 하나로 합치는 길을 아득하게 바라보면 되리라. 오늘 아침 보이는 것은 사방 벽뿐이지만, 시인은 그 너머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시선을 잠시 가져보라. 이승에서 바둑을 무척이나 사랑한 박재삼 시인, 아마 지금 천상에서도 바둑을 두며 바둑알과 바둑알 사이를 재고 있을지 모른다. 언어와 언어 사이의 거리를 재듯, 이승에서 사랑하던 사람과의 거리를 재듯.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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