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반고등어 - 박후기 (1968~ )
가난한 아버지가 가련한 아들을 껴안고 잠든 밤
마른 이불과 따뜻한 요리를 꿈꾸며 잠든 밤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껴안고 잠든 밤
소금 같은 싸락눈이 신문지 갈피를 넘기며 염장을 지르는, 지하역의 겨울밤
넉 줄밖에 안 되는 이 시행 사이엔 무수한 서사가 들어 있다. ‘큰 슬픔’의 정체가 무엇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 그저 읽으라. 그리고 시행들 사이의 장면을 느끼라. 두 마리의 생선이 소금에 절여져 그러나 껴안고 있는 그 아름다운 아픔, 거기에 오버랩되는 어떤 노숙자의 껴안고 있는 잠, 나아가 이 시대를 사느라 고단한 모든 잠들, 그리하여 이 작은 시 다큐멘터리는 ‘소금 같은 싸락눈’의 휘날리는 춤으로 끝난다. 그 시 이야기를 느끼라. 이 도시의 구석 선반 한 끝에 있는 자반고등어의 이야기를. 느낌은 해석 또는 분석을 압도한다. 당신의 느낌이 해석 또는 분석을 앞지름을 의심하지 말라. 당신의 느낌에 프라이드를 가져라. 아침의 시들은 모두 느낌이 해석 또는 분석을 앞지르는 시들이다.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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