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스라엘 앞에만 서면 미국은 왜 작아지나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

푸른물 2009. 10. 23. 07:51

이스라엘 앞에만 서면 미국은 왜 작아지나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MSN 메신저 보내기
  • 뉴스알림신청
  • RSS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기사목록
  • 스크랩하기
  • 블로그담기

입력 : 2008.02.01 23:29 / 수정 : 2008.02.01 23:30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외교정책(Israel lobby and U. S. Foreign Policy)
존 J. 미어샤이머·스티븐 M. 월트 지음|파라 스트라우스 지로|484쪽|26달러

이스라엘 로비를 정면으로 다룬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이스라엘 제사장의 이름을 가진 새뮤얼 헌팅턴에게 헌정됐다. 그리고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이래로 가장 논쟁적인 미국 정치학자의 책이 될 듯 하다. 키신저의 침묵과는 대조적으로 브레진스키는 이 책에 찬사를 보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이스라엘 로비'란 단순히 이스라엘 정부에 의한 로비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외교 정책을 친이스라엘적으로 끌고 가고 있는 일련의 조직들과 개인들의 노력'을 의미한다.

이 책의 주장은 매우 위험한 선을 건드리고 있다. 반유대주의다. 서양 문명의 중심은 유대계 엘리트들의 인구 이동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서진해왔다. 그것은 동시에 반(反) 유대주의가 불붙는 선이기도 했다. 미국도 반유대주의에 휩싸이는 것일까? 아니면 지극히 건전한 이성적 비판인가? 이전에도 이 책의 논지와 유사한 경고를 한 사람들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폭발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2년 2월 허리에 폭약을 두른 하마스 자살특공대가 가자 지구 북부에서 팔레스타인 군부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어샤이머와 월트 교수는 미국이 유대계의 로비에 밀려 이스라엘의 국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자국의 안보를 방치해왔다고 비판한다.
첫째, 분명하고 도발적인 논지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2차 세계대전 이래로 미국 원조의 최대 수혜국'이라는 사실은 이스라엘 로비와 직결된다. 1973년부터 2003년까지 이스라엘은 미국 해외원조 예산의 5분의 1을 독식했다. 그것이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나? 많은 경우 그것은 미국의 국익보다 외국(이스라엘)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이스라엘의 국익에도 해를 끼칠 것이다. 미국-이스라엘 공공업무위원회(AIPAC)로 상징되는 이스라엘 로비는 언론계, 학계, 씽크탱크, 그리고 정부를 조용히 압박해왔다. 유대계 정치자금은 정치인들의 목을 졸랐고, 유대계 자선기금은 학계와 여론을 조종했다.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은 알아서 비판을 삼갔다. 많은 유대계 의원들은 알아서 미국주의(Americanism) 보다 유대주의적 관점에서 표결했다. 2004년 12월 유엔에서 팔레스타인 인권을 해친 이스라엘의 행위를 규탄하는 결의안이 표결에 붙여져서 149대 7로 통과될 때, 미국은 호주와 함께 이스라엘의 편에 섰다. 마샬 군도, 미크로네시아, 나우루, 팔라우 같은 소국들만이 이들을 따랐다.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이 초라하게 추락하는 모습이었다. 잘못된 결정의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의 착한 납세자들이 걸머져야 했다.

둘째, 이 책의 저자들이 이미 구축한 학문적 명성도 한몫한다. 저자들은 결코 한 건의 폭로로 입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명문 시카고 대학과 하버드 대학의 교수들이며, 일가를 이룬 학자들이다. 이들의 주장을 21세기 판 '시온 의정서'라고 혹평하는 글을 하버드 대학의 같은 사이트에 올려놓은 하버드 법대의 더쇼위츠 교수 역시 이들의 '학문적 명성'을 우려한다. 논쟁의 결과와 상관없이 확실한 것은 저자들이 그동안 쌓아온 무게를 이 책에 실었다는 것이고,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은 저자들의 학문적 생명을 건 결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이 책의 저자들이 자타가 공인하는 현실주의 학자들이라는 점이다. 현실주의의 핵심 화두는 자국의 국익이다. 그런데 이들의 눈에 비친 미국은 "다른 나라(이스라엘)의 국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안보를 기꺼이 방치해왔다." 이상주의자들은 최악은 물론 차악에 대해서도 비판하지만, 현실주의자들은 최악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차악을 용인해왔다. 9·11은 최악이고, 이스라엘 로비는 차악이었다. 그런데 만약 차악이 최악의 원인이었다면…. 이 책은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서조차 독자들의 사고를 열어젖히고 있다.

넷째, 애국적 열광과의 결합이다. 웨스트 포인트 출신의 미어샤이머가 개진하는 논리는 9·11이후 제정된 '애국법'으로 상징되는 애국적 열광을 자극한다. 처음 이 애국적 열광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적으로 삼았고,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라크 전선에서 속출하고 있는 미군 병사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있는 애국적 분노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표적을 찾고 있다. 이 책이 자극한 폭발적 담론의 출구들 중 일부가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같은 지점에서 이 책은 세계주의와 애국주의라는 또 다른 논쟁 축과 맞물린다. 미국 내에서 세계주의를 표방하는 대표적 지식인들이 유대계라는 사실은 단지 우연일까? 미국의 애국주의가 반유대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가?

다섯째, 이 책이 미국 외교정책의 기축 변동과 맞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출구를 찾고 있다. 이것은 과거 베트남 전쟁이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겪은 전철을 연상시킨다. 이라크 전쟁으로 추락한 미국은 희생양을 찾고 있는가? 이 책의 논지에 전율하는 사람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유대인들이 희생양이 되었던 역사를 떠올린다. 무엇보다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은 미국의 대선(大選) 정국과 맞물려 있다. 이 책의 논리는 민주당 진영, 특히 오바마 진영의 입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준다. 힐러리 클린턴조차도 온건한 이스라엘 로비에 포섭되어 있다고 보는 미국 사람들은 오바마에게 폭발적 지지를 보낼 지도 모른다. 이 책에 찬사를 보낸 브레진스키가 이미 오바마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선언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공격을 당하는 이스라엘 로비의 합리적 선택은 힐러리 클린턴이 될 수도 있다.

이란의 수도 이름을 딴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가 신흥 금융가로 부상하는 동안 한국과 이슬람 세계 간의 관계도 꾸준히 증대해왔고, 최근에는 가속도가 붙은 듯 하다. 이라크 파병,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길거리의 이슬람계 이주민들, 그리고 이슬람 펀드 등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가나안 농군학교, 골리앗을 이긴 다윗 정신으로 대표되는 강소국 모델, 구약성경, 탈무드 등 이스라엘과 한국의 관계도 뿌리 깊다. 무엇보다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 전쟁에 파견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한국의 인식은 부분적으로 미국의 관성적 인식과 궤를 같이했던 것도 사실이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러나 이 책은 미국의 관성적 인식의 축이 바뀔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에 앞서 '숙명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책을 통해 이스라엘 로비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노엄 촘스키가 선지자였다면, 이 책의 저자들은 제사장들이다. 선지자들은 큰 통찰을 보여주지만, 황야의 외침처럼 외로울 수 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수많은 사제와 부제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미국 외교정책 이념의 제사장들이다.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은 한국의 첫사랑이 식었다고 했다. 지금 한국은 그러한 첫사랑을 회복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 외교정책의 축이 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