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족의 재구성] [4] 사이버부부 20만쌍, 인터넷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푸른물 2009. 8. 5. 07:54

[가족의 재구성] [4] 사이버부부 20만쌍, 인터넷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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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7.29 02:54 / 수정 : 2009.07.29 17:37

사이버 가족
형부 등 가상친척 만나고 사이버인맥 맺고 가상생활
너무 빠져 실생활과 혼동 싫증나면 쉽게 갈라서기도

2006년 6월 17일 한 커플이 결혼식을 올렸다. 꼬마 신랑은 끝이 뾰족한 중세풍(風) 구두에다 등엔 활을 맸고, 긴 베일을 드리운 신부는 흰색 꽃다발을 들었다. 신랑이 신부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 뒤 부부는 빨간 융단을 걸어 행진했다. 푸른 숲이 우거진 유럽 스타일의 고성(古城)이었다.

5분 남짓 걸린 이 결혼식은 그러나 현실이 아니었다. 컴퓨터 게임 '마비노기(아바타, 즉 사용자의 분신이 동굴탐험·결혼 등을 통해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게임)' 안에서 진행된 '사이버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아바타 결혼을 한 두 남녀는 지난해 10월 19일 '진짜 결혼식'을 올리고 현실에서도 부부가 됐다. 경기도 포천에 사는 조남정(28·육군 부사관)· 천경미(30·사무직)씨 부부 얘기다.

온라인상에서 결혼한 건 같이 게임을 하며 친해진 데다 나이도 비슷해 '장난삼아' 한 일이었다. 일단 사이버 부부가 되니 게임에서 상대방이 보이지 않으면 찾게 됐고, 게임 속 상대방의 말 하나하나에도 신경이 쓰였다.

사이버 결혼식을 올린 지 약 두 달 후, 이들은 서울의 한 카페에서 실제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처럼 친근감이 갔다"고 했다. 그리고 1년여 교제 끝에 진짜 부부가 됐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마주하지만, 일주일에 1~2회씩은 게임 안에서 다시 부부가 되어 만난다. 실생활에서 함께 밥 먹고 TV를 보듯, 온라인에서도 이들은 같이 동굴 탐험을 하고 괴물을 무찌른다. 서재에 놓인 대형 모니터 달린 컴퓨터 두 대가 이들의 '이중생활'을 상징하고 있었다.

조씨 부부는 실제 결혼까지 올린 특수 케이스지만, 온라인에서 가족 관계를 맺는 '사이버 가족'은 이제 드물지 않다.

세계 13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가상공간인 '세컨드라이프 닷컴(http://Secondlife.com )'에선 회원들이 제2의 자아(自我)를 만들어 일상생활을 할 뿐 아니라 결혼해 가정도 꾸린다. 이 중 한국인 회원은 0.23%(2만9900명) 정도다.

세컨드라이프 닷컴의 한국 커뮤니티인 '세라 코리아'에도 현재 4만5740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사이버 생활을 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 속에서 결혼한 부부는 4000쌍 이상, '바람의 나라' 등의 사이버 부부는 총 20만쌍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도 나와있다(민간단체 '사이버문화연구실').

장준호 상명대(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가족을 '돈독하게 교류하는 사람'이라고 본다면, 인터넷으로 긴밀하게 접촉하고 유대 관계를 맺는 사람도 '가족' 혹은 '가족 같은(family-like) 관계'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사이버부부에서 실제부부로 사이버 세계의 인연이 현실로 이어졌다.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에서 부부 관계를 맺고 실제로 결혼한 조남정·천경미씨 부부가 경기도 파주 신혼집에서 온라인 결혼식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사이버 가족의 '그늘'

하지만 온라인에서 쉽게 맺는 가족 관계가 실생활에서의 인간관계 형성을 방해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엔 가상현실 게임의 한 종류인 '에버퀘스트' 중독자를 배우자로 둔, '에버퀘스트 과부(Widows)' 모임이 있다. 배우자가 가상현실에 중독돼 실제 가정사는 전혀 돌보지 않는 탓에 사실상 과부가 되어버렸다는 의미다.

두 달 전 '세라 코리아'에서 이모(28·취업준비)씨와 결혼식을 올린 김현수(가명·26)씨도 가상현실에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 중 하나다. 김씨는 사이버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반지를 맞추고 꽃을 사고 부부가 살 집을 구입했다. 이런 물건들을 구매하려면 실제 돈을 '린든 머니'라는 가상의 게임 머니로 환전해야 한다. 김씨는 이를 위해 용돈 10만원을 투자했다.

요즘도 김씨는 하루 1~2시간은 가상현실에서 아내, 가상 친척들과 시간을 보낸다. 가상 친척이란, 김씨가 결혼을 하며 맺어진 사이버 인맥이다. 아내와 친하게 지내던 온라인 이용자들이 이씨가 결혼한 후, 자기들끼리 역할을 만들어 그를 '삼촌' '형' '제부' '형부' 등으로 부르며 맺어진 관계다.

김씨는 "게임을 오래 하다 보니 온라인에서 만나는 아내나 친척이 진짜 가족보다 더 친근하고, 결혼해서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는 가상 세계가 진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인간관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실과 가상을 혼동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도 종종 나온다. 지난달 초에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한국인 여성 게이머의 죽음 때문에 해당 게임 게시판이 시끌시끌했다. 이 여성이 국내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몇 년째 함께 부부 생활을 하던 남편이 온라인에서 바람을 피우자 충격으로 자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현실 가족관계를 보완할 수도

사이버 세계에선 배우자가 있는 데도 바람을 피우거나, 부부가 망설임 없이 이혼하는 것처럼 현실에선 실행하기 어려운 일들이 쉽게 이뤄지기도 한다. 현실세계와 달리 윤리 의식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현아(가명·23)씨는 두 달 전, 가상현실 게임에서 '아기'를 구입했다. 이 게임에선 이용자들이 디자인한 홈페이지 배경 장식이나 자잘한 소품 등을 만들어 다른 이용자에게 팔기도 한다. 아기도 이 가운데 하나다. 이씨는 사이버상에서 미혼모가 된 셈이다. 이씨는 "아기가 예뻐서 거실 같은 곳에 장식해 두기 좋을 것 같아서 샀다"고 말했다.

상명대 장준호 교수는 "사이버 가족은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그늘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세계의 가족관계를 현실과 혼동한다든지, 사이버상에서 가족윤리가 흔들리는 현상 등이 어두운 그늘 부분이다.

반면 기러기 가족이나 한부모 가정처럼, 현실 가족관계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는 가족은 온라인상의 인간관계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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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09.07.29 02:54 / 수정 : 2009.07.29 17:37

    사이버 가족
    형부 등 가상친척 만나고 사이버인맥 맺고 가상생활
    너무 빠져 실생활과 혼동 싫증나면 쉽게 갈라서기도

    2006년 6월 17일 한 커플이 결혼식을 올렸다. 꼬마 신랑은 끝이 뾰족한 중세풍(風) 구두에다 등엔 활을 맸고, 긴 베일을 드리운 신부는 흰색 꽃다발을 들었다. 신랑이 신부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 뒤 부부는 빨간 융단을 걸어 행진했다. 푸른 숲이 우거진 유럽 스타일의 고성(古城)이었다.

    5분 남짓 걸린 이 결혼식은 그러나 현실이 아니었다. 컴퓨터 게임 '마비노기(아바타, 즉 사용자의 분신이 동굴탐험·결혼 등을 통해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게임)' 안에서 진행된 '사이버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아바타 결혼을 한 두 남녀는 지난해 10월 19일 '진짜 결혼식'을 올리고 현실에서도 부부가 됐다. 경기도 포천에 사는 조남정(28·육군 부사관)· 천경미(30·사무직)씨 부부 얘기다.

    온라인상에서 결혼한 건 같이 게임을 하며 친해진 데다 나이도 비슷해 '장난삼아' 한 일이었다. 일단 사이버 부부가 되니 게임에서 상대방이 보이지 않으면 찾게 됐고, 게임 속 상대방의 말 하나하나에도 신경이 쓰였다.

    사이버 결혼식을 올린 지 약 두 달 후, 이들은 서울의 한 카페에서 실제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처럼 친근감이 갔다"고 했다. 그리고 1년여 교제 끝에 진짜 부부가 됐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마주하지만, 일주일에 1~2회씩은 게임 안에서 다시 부부가 되어 만난다. 실생활에서 함께 밥 먹고 TV를 보듯, 온라인에서도 이들은 같이 동굴 탐험을 하고 괴물을 무찌른다. 서재에 놓인 대형 모니터 달린 컴퓨터 두 대가 이들의 '이중생활'을 상징하고 있었다.

    조씨 부부는 실제 결혼까지 올린 특수 케이스지만, 온라인에서 가족 관계를 맺는 '사이버 가족'은 이제 드물지 않다.

    세계 13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가상공간인 '세컨드라이프 닷컴(http://Secondlife.com )'에선 회원들이 제2의 자아(自我)를 만들어 일상생활을 할 뿐 아니라 결혼해 가정도 꾸린다. 이 중 한국인 회원은 0.23%(2만9900명) 정도다.

    세컨드라이프 닷컴의 한국 커뮤니티인 '세라 코리아'에도 현재 4만5740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사이버 생활을 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 속에서 결혼한 부부는 4000쌍 이상, '바람의 나라' 등의 사이버 부부는 총 20만쌍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도 나와있다(민간단체 '사이버문화연구실').

    장준호 상명대(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가족을 '돈독하게 교류하는 사람'이라고 본다면, 인터넷으로 긴밀하게 접촉하고 유대 관계를 맺는 사람도 '가족' 혹은 '가족 같은(family-like) 관계'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사이버부부에서 실제부부로 사이버 세계의 인연이 현실로 이어졌다.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에서 부부 관계를 맺고 실제로 결혼한 조남정·천경미씨 부부가 경기도 파주 신혼집에서 온라인 결혼식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사이버 가족의 '그늘'

    하지만 온라인에서 쉽게 맺는 가족 관계가 실생활에서의 인간관계 형성을 방해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엔 가상현실 게임의 한 종류인 '에버퀘스트' 중독자를 배우자로 둔, '에버퀘스트 과부(Widows)' 모임이 있다. 배우자가 가상현실에 중독돼 실제 가정사는 전혀 돌보지 않는 탓에 사실상 과부가 되어버렸다는 의미다.

    두 달 전 '세라 코리아'에서 이모(28·취업준비)씨와 결혼식을 올린 김현수(가명·26)씨도 가상현실에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 중 하나다. 김씨는 사이버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반지를 맞추고 꽃을 사고 부부가 살 집을 구입했다. 이런 물건들을 구매하려면 실제 돈을 '린든 머니'라는 가상의 게임 머니로 환전해야 한다. 김씨는 이를 위해 용돈 10만원을 투자했다.

    요즘도 김씨는 하루 1~2시간은 가상현실에서 아내, 가상 친척들과 시간을 보낸다. 가상 친척이란, 김씨가 결혼을 하며 맺어진 사이버 인맥이다. 아내와 친하게 지내던 온라인 이용자들이 이씨가 결혼한 후, 자기들끼리 역할을 만들어 그를 '삼촌' '형' '제부' '형부' 등으로 부르며 맺어진 관계다.

    김씨는 "게임을 오래 하다 보니 온라인에서 만나는 아내나 친척이 진짜 가족보다 더 친근하고, 결혼해서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는 가상 세계가 진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인간관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실과 가상을 혼동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도 종종 나온다. 지난달 초에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한국인 여성 게이머의 죽음 때문에 해당 게임 게시판이 시끌시끌했다. 이 여성이 국내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몇 년째 함께 부부 생활을 하던 남편이 온라인에서 바람을 피우자 충격으로 자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현실 가족관계를 보완할 수도

    사이버 세계에선 배우자가 있는 데도 바람을 피우거나, 부부가 망설임 없이 이혼하는 것처럼 현실에선 실행하기 어려운 일들이 쉽게 이뤄지기도 한다. 현실세계와 달리 윤리 의식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현아(가명·23)씨는 두 달 전, 가상현실 게임에서 '아기'를 구입했다. 이 게임에선 이용자들이 디자인한 홈페이지 배경 장식이나 자잘한 소품 등을 만들어 다른 이용자에게 팔기도 한다. 아기도 이 가운데 하나다. 이씨는 사이버상에서 미혼모가 된 셈이다. 이씨는 "아기가 예뻐서 거실 같은 곳에 장식해 두기 좋을 것 같아서 샀다"고 말했다.

    상명대 장준호 교수는 "사이버 가족은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그늘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세계의 가족관계를 현실과 혼동한다든지, 사이버상에서 가족윤리가 흔들리는 현상 등이 어두운 그늘 부분이다.

    반면 기러기 가족이나 한부모 가정처럼, 현실 가족관계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는 가족은 온라인상의 인간관계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