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卵子) 복권'에 반대하는아버지의 정신 받들어 기아문제 해결에 헌신
23세 아들은 농업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땅을 살 돈이 없었다. 아들의 고민을 알게 된 아버지는 제안했다. "내가 산 땅에서 경작해도 좋다." 단, 조건이 있었다. "임차료는 시세(時勢)대로 내라."아들에게조차 '공짜'를 허락하지 않았던 이 아버지는 세계 최고 갑부인 워런 버핏(Buffett·79)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며, 아버지에게 임차료를 내가며 콩과 옥수수 경작을 시작한 농부가 장남 하워드 버핏(54)이다.
저절로 물려받을 재산은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친 하워드가 최근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 보도했다.
- ▲ 워런 버핏의 아들 하워드 버핏이 아프리카 농부들에게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 경작을 알려주고 있다./WSJ
아버지 버핏은 오래전부터 "갑부의 자식들이 단지 '난자 복권(ovarian lottery)'에 당첨됐다는 이유(부자 부모를 만났다는 이유)로 거대한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사회에 좋을 것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2007년에는 상원 공청회에 나가 "부(富)의 집중을 막기 위해 상속세를 늘려야 한다"고까지 역설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하워드는 부모의 재산으로 편하게 지내는 '귀공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4년 사망한 어머니 수전의 영향력도 컸다. 질병 퇴치와 교육 문제에 관심이 높았던 수전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워드가 아프리카 기아 문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2000년 여행 때였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그는 아프리카 풍경을 담으려고 카메라 각도를 잡다가 가난한 화전민이 불을 놓은 벌거벗은 땅을 발견했다. 하워드는 "배가 고프면 환경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아프리카인이 먹고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는 풍토가 다양해 단일 작법이 적용되기 어려운 데다 관개시설이 열악하고 농부들의 교육 수준도 낮다. 결국 하워드는 질병과 가뭄에 강한 농작물을 개발해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의 이름을 딴 '하워드 G 버핏 재단'은 병충해에 강한 감자 개발과 아프리카 농민을 위한 소액대출 등을 지원하는 데에 올해 3800만달러를 투자했다.
장남에 대해 버핏은 "내 돈과 수전의 마음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검은 대륙을 위해 열정을 쏟는 아들과 대조적으로, 아버지 버핏은 아프리카에 가본 적도 없다. 아들의 아프리카행을 두고는 "나라면 싫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워드는 자신의 한계에 대해 솔직하다. "아프리카 문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다. 시작했을 때보다 의욕이 꺾였다"고 고백했다. 아버지 버핏은 아들에게 '끈기를 가지라'고 충고했다. "어떤 일에든 마음을 쏟아 부으면 결국에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하워드는) 아직 젊으니 성취할 수 있는 시간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