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인생2막!] [4] "육아 경험 살려 첫 직장 잡았죠"
- 전업주부에서 어린이집 교사 된 민금례씨
남편 권유로 다시 공부 시작 방송대 진학해 자격증 취득
"까다로운 영아반 믿고 맏겨줘
몸은 힘들어도 가슴은 뭉클"
- ▲ 3남매 튼실히 키워낸 경험과 노하우로 50대에 어린이집 교사가 된 민금례씨. 그녀는“시험기간이면 설거지를 도맡아 했을 정도로 밀어주고 격려했던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꿈을 이루지 못했 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인생 2막' 계획을 세우는 데 전업주부라고 예외는 아니다.
결혼 후 3남매를 키우며 주부로서만 살아온 민금례(55)씨는 육아 경험을 밑천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주인공. 현재 경력 1년 7개월의 어린이집 교사인 그는 53세 때인 2007년 11월 생애 첫 직장을 갖게 됐다. 인천시 부개동 예지몬테소리 어린이집이 민씨의 일터. 신입 교사인 동시에, 원장보다 무려 열 살이 많은 최고령 교사다.
어린이집 교사로 인생 2막을 열게 된 계기는 남편의 한마디였다. "3남매 대학 보내고 나니 남편이 '이제부터라도 원 없이 공부해보지 않겠냐'고 해요. 제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도에 학업을 마쳐야 했던 게 늘 안타까웠나 봐요. 고마웠지만 그러려면 검정고시부터 다시 봐야 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 없었어요."
하지만 시작이 반이었다. 2001년 중학 과정 검정고시를 치렀고, 이듬해 4월 고등학교 과정을 통과했다. 내친김에 그해 12월 방송대 입학시험까지 도전했다. "검정고시 준비부터 쉽지 않았어요. 책상머리하고 떨어져 산 지 수십 년인데 갑자기 교과서가 눈에 들어오나요? 이해의 폭이 좁은 건지 도통 머릿속에 안 들어와요. 하지만 연세 지긋한 선생님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저 연세에도 저리 열심히 사시는데 하는 생각에요."
가정학과를 선택한 것은 육아와 살림이 그녀의 가장 큰 '커리어(career)'였기 때문이다. 물론 4년간의 대학 생활은 쉽지 않았다. 방송대는 저렴한 학비로 비교적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출석수업이나 시험이 일요일에 많아 집안 대소사와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자신감. 한 달간의 어린이집 교사 실습을 거쳐 마침내 보육교사 자격증을 얻었지만, "누가 환갑을 바라보는 여자를 써줄까" 자격지심에 시달렸다. "실제로 함께 공부했던 젊은 친구들은 지원하는 족족 입사를 하는데 저는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안 왔어요."
'내 주제에 취업은 무슨' 하고 체념한 순간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졸업 후 9개월 만의 일이었어요. 꿈만 같았죠. 내가 정말 직업을 갖게 되는 걸까 설레는 마음 반, 내가 아이들을 잘 돌봐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반."
민씨의 하루는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7시가 돼야 끝이 난다. 어린이집이 집 근처에 있어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처음엔 4~5세 반을 맡았다가 지난해 3세 반 아이들을 돌봤고, 올해부터는 영아반을 책임지고 있다. "원장님이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아시다시피 영아들이 가장 돌보기 어려운데, 아이 셋 키운 '저력'을 고려하셨는지 올해부터 영아반을 신설해 아예 제게 맡기셨습니다."
젊은 원장님, 그보다 더 어린 선생님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생각만큼 어렵진 않았다. "제가 불편해할까 봐 원장님이 처음 얼마 동안은 자기 나이를 밝히지 않았답니다.(웃음) 젊지만 저보다 훨씬 선배인 교사들도 저를 인생 선배, 맏언니인 양 대해줘서 오히려 가족적인 분위기예요."
물론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하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체력은 부친다. 주부였던 때와 달리 하루를 규칙적으로 규모 있게 운용해야 하니 살짝 스트레스도 받는다. 월급이 많은 편도 아니다. 그래도 견딜 만하다. "교사는 천사도 흠모한다는 귀한 직업이라잖아요. 6~7세 반으로 올라간 아이들이 요즘도 나와 눈을 맞추고 내가 등을 두드려줘야 제 반으로 가는 걸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민금례씨는 주위 전업주부들에게 그간 갈고닦은 살림과 육아 노하우로 인생 2막의 프로젝트를 세워보라고 조언한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해보세요. 아이들과 있으면 웃을 일이 많아지고, 나 자신도 몰랐던 달란트를 발견하게 된답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은 버리세요. 시작하면 길은 열리더라고요."
/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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