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지쳐도 우리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어 힘을 내요"
다른 병원에 입원했어도 찾아가서 애프터서비스
8년간 이동거리 184만㎞… 지구둘레 46바퀴 돈 셈
2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 한옥. 남편과 사별한 지 2년째인 최원년(73)씨의 작은 방에 은색 재킷 유니폼을 입은 류미숙(41)팀장이 찾아왔다. 최씨가 걷어 올린 무릎에 길이 15㎝의 수술자국이 선명했다. 최씨는 올 2월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퇴원하면 그만이지 집까지 찾아오고 그래." 최씨의 목소리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여 있다. 최씨가 무릎을 구부리자 '뚝뚝' 소리가 났다. 류 팀장이 각도기를 꺼내 이리저리 재기 시작했다. "걱정 마세요. 곧 있으면 양반다리도 하고 앉을 수 있을 거예요." 그제서야 최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최씨의 집은 관절 전문 '힘찬병원'이 방문간호 서비스를 시작한 지 3만 번째 집이다. 8년째 방문간호를 하는 류 팀장은 "처음에는 '적당히 하다 끝나겠지' 했는데 3만 번이 됐다"며 "환자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 ▲ 백의(白衣)의 천사 5명이 오늘도 전국을 돈다. 그들은 '날개' 대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힘없고 아픈 이들의 집을 날듯이 찾는다. "오늘도 환자들에게 기쁨을 줬다는 생각에 행복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다. / 힘찬병원 제공
'현대판 왕진(往診)' 서비스는 힘찬병원 이수찬 대표원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수술을 마친 환자들이 문제없이 완쾌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이 원장은 전남 무안과 충남 당진을 다녔다. 그러다 2006년부터 아예 방문간호 전담팀을 꾸린 것이다. "관절 질환은 회복기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수술을 받고도 이전과 같은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병이 재발하게 되죠. 그래서 직접 간호사들을 보내 관리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방문간호팀은 경력 10년이 넘는 간호사 5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운전기사와 2인 1조로 활동하며 하루 평균 6시간씩 이동한다. 간호사 한 명이 만나야 하는 환자는 10명으로 하루에 총 50명의 환자가 방문 진료를 받는다. 오예선(46) 간호사는 "어떤 분을 만날지, 얼마나 회복이 됐는지 매번 기대가 된다"고 했다.
방문간호팀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가까이는 병원이 있는 인천부터 부산과 제주도까지 간다. 지금까지 이동한 거리가 184만6800㎞다. 지구를 46바퀴나 돈 셈이다. 배숙경(40) 간호사는 "몸은 힘들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어 힘을 낸다"고 했다.
이들이 만나는 환자 대다수가 독거노인이다. 젊었을 때 고생하며 관절을 무리하게 사용하다 늙어서 병을 얻게 된 경우다. 류미숙 팀장은 "관절 질환은 '가난한 사람 병'이라 불린다"며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홀로 지내는 어르신이 60%가량"이라고 했다. "벽에 금이 가고 곧 철거 예정인 곳에 사는 분도 많아요. 그런 분들에게는 20㎏짜리 쌀을 두고 오기도 합니다. 차 속에 항상 쌀 2~3포대가 준비돼 있죠."
김원자(35) 간호사는 "무릎이 안 좋아 집안에만 있다 보니 우울증에 걸리신 분들도 많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불안감을 없애주려 노력한다"고 했다. 박진경(39) 간호사는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간호가 아니라 그들이 잘 살도록 모든 부분을 돌봐주는 일"이라고 했다. 환자 김진옥(67)씨는 "이들이 없었으면 잘 걷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나는 환자마다 형편이 다르니 재활치료법도 천차만별이다. 오예선 간호사는 "형편에 맞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집에 들어가자마자 잽싸게 집안을 둘러본다"고 했다. "한번은 단칸방에 사는 환자를 만나는데 침대나 의자를 놓을 공간이 없었어요. 궁리하다 관절에 무리가 안 가게 벽에 잘 기대는 법을 알려줬죠. 임기응변이 필요해요."
3만명의 환자를 만나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생겼다. 주소가 잘못돼 30~40분씩 헤매기도 하고 환자들이 차린 음식을 거절할 수 없어 꾸역꾸역 먹다 배탈이 난 적도 있다. 간호팀은 환자를 만나러 도서관, 관공서, 경찰서, 회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다른 병원에까지 갔다.
오예선 간호사는 "다른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만나러 갔더니 그 병원 간호사들이 '이런 서비스가 있구나' 하며 의아해했다"고 말했다. 류 팀장은 "한번은 환자에게 '아들 집에서 푹 쉬면서 회복하시라'고 했다가 며느리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 자주 있다"고 했다. "한번은 혼자 사시는 간암 말기 환자를 만났어요. 사람이 많이 그리우셨나 봐요.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하시는데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간호사들은 "병원에 있을 때는 환자들의 아픈 표정만 보다가 수술 후에는 밝은 표정을 볼 수 있어 좋다"며 "사람 자체를 간호한다는 측면에서 참 보람되다"고 했다.
이수찬 원장은 "방문간호는 환자의 증상뿐만 아니라 마음의 질병도 치유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소중한 부분"이라며 "앞으로 환자의 수술 다음 단계까지 책임지고 관리하는 병원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