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대중칼럼] 국면을 전환해야

푸른물 2009. 6. 13. 08:44

김대중칼럼] 국면을 전환해야

발행일 : 2009.06.08 / 여론/독자 A34 면 기고자 :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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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문제에 오래 머물지 말았으면 한다. 그의 죽음이 아무리 애석하고 애통해도 그는 '과거'다. 지금 우리 앞에는 너무나 무겁고 어렵고 또 무서운 '오늘'과 '내일'의 문제가 놓여 있다. 온통 거기에 매달려도 쉽지 않은 일들이다.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한 말의 깊은 뜻이 거기에 있다고 믿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는 큰 혼란과 위기에 직면해 있다. 밖으로는 북핵의 위협과 군사적 도발의 가능성을 둘러싼 국제적 논의가 날카롭게 진행되는 한편, 세계적 경제위기가 여전히 위협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이고, 안으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촉발한 국론분열과 정치적 싸움의 열기가 나라를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이 오늘의 문제가 우리 미래의 생사를 좌우할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의 문제에 계속 머물며 그것으로 인해 서로의 반목(反目)이 심화되고 더 나아가 거기서 무슨 정치적 이득이나 보려고 하는 기도는 국가적으로 지극히 해악적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있고 부차적으로 야당인 민주당이 나누어 가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여당 내 쇄신 요구에 대해 엇박자만 놓고 있다. '국면전환용(局面轉換用)'제스처는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꽉 막힌 발상이다. 지금 오히려 필요한 것은 국면의 전환이다. 소통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것을 소신(所信)인 것으로 착각하는 구시대적 소영웅주의가 이명박정부 내에 만연해 있는 한, 그와 그의 정권이 이 나라를 효율적으로 이끌어나갈 길은 없다고 단언한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 하나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MB정부의 무기력과 취약성은 국민 보기에 면구스러울 정도다. 야당과 좌파세력이 일제히 '사죄'를 요구하며 그의 퇴진을 거침없이 요구하는 데까지 이른 것은 이 대통령이 그만큼 얕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솔직히 보수-우파측에서 보더라도 요즘 이 대통령의 발언과 보도사진들은 '남의 나라 대통령'의 것처럼 느껴진다. '경제살리기'도 고장 난 레코드처럼 들린다. 일부러 평상심을 연출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이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금 적극 국면전환에 나서야 한다. 친북세력을 제외한 모든 정파에 손을 내밀고 정계개편에 준하는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당내 반대파를 삼고초려 하는 감동의 정치를 펴야 한다. 국민통합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이는 이벤트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고 그때부터 레임덕 대통령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사실상의 임기는 지금부터 1년 남은 셈이다.

민주당에는 역풍(逆風)의 엄중함을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역풍의 시대에 살고 있다. 체육인이건, 연예인이건, 또는 다른 유명인이건 한때를 풍미하던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교만과 자만에 빠지는 순간 역풍에 내몰려 추락하는 것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멀리는 박정희와 YS-DJ가 그랬고 가까이는 MB가 '5백만표 차이'위에서 춤추다 역풍에 내몰리고 있다. 탄핵파동으로 승승장구하는 듯했던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추락도 그랬다.

사람들은 지금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못내 애통해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중에는 "나의 애도가 민주당의 어부지리에 이용당하는 것이 싫다"는 의사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을 조문했다고 해서 수백만명이 모두 민주당의 정치적 동조자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현직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상황적 정치적 책임을 물어 '사죄'하라고 하는 것은 전 세계 어느 나라 정치도의에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노 전 대통령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다가 죽은 경우는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의 죽음을 오랜 여운으로 간직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칫 민심의 역풍에 몰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언제까지나 검은 띠를 두르고 의회정치를 보이콧하며 오로지 'MB사죄'로 매진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 이 대통령과 함께 갈 수 없다면 앉아서 편리하게 사죄나 퇴진을 외치며 MB가 스스로 나가주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탄핵 등 구체적 절차를 밟으며 전국민적 동참을 유도하는 적극적 액션에 나서는 것이 옳은 태도다. 진정성이 없는 기회주의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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