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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스위시 샘플 1번 선택해서 열기 누르시고, 그림자료 가져오세요. 모션 버튼 선택해서 움직여 보시고요."
지난 22일 오후 8시 군포시 오금동 오금마을정보센터.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이곳에 모인 '반백의 학생들'은 김태규 강사의 말에 집중했다. 간혹 막히는 부분에선 "글자가 잘 안 움직여요"라며 손을 드는 학생도 있었으며 옆에 앉은 짝에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을 물어보는 학생도 있었다.
이날 강의는 스위시(웹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그램) '움직이는 사진 효과 주기'. 10여명의 학생들은 대부분 60~75세의 연령대로, 작년 초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마다 모여 두 시간씩 강의를 듣고 있다.
작년 10월, 이들은 배운 것을 기반으로 '클럽'을 결성했다. 동그라미 동호회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클럽이 바로 그것. 결성 4개월 만에 전국 353개 정보화마을 680여개 동호회 중 최우수 동호회로 선정됐으며, 하루 평균 400여명의 방문자가 찾는 '인기 사이트'로 거듭났다.
김지연(여·66)씨는 "동호회 활동으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년 사이에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UCC 보여주니 손주들이 좋아해"UCC클럽은 생긴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기원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파구청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정년 퇴직한 심윤근(75)씨는 1997년 오금동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기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파트 마을회관 한쪽에 '실버교육장'이란 이름의 강의실을 얻어 컴퓨터 8대를 가져다 놓았다.
조그맣게 운영되던 실버교육장은 2001년 오금동이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정보화시범마을'에 선정되면서 확대됐다. 2층 규모의 마을정보센터가 생기면서 심씨의 직함 역시 실버교육장 강사에서 '오금정보화마을 교육부장'으로 바뀌었다.
그를 중심으로 강의를 듣던 학생들은 좀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고, 작년 '스위시 프로그램' 강의를 들은 이들이 "강의에서 들은 걸 실제로 써먹자"며 'UCC클럽'을 결성했다.
회원 수 18명에 불과하지만 오랜 기간 함께한 만큼 이들의 결속력은 강했다. 매달 제부도·서울랜드 등으로 '출사'를 나갔으며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이를 편집해 클럽 'UCC솜씨 뽐내기'에 올렸다. 이를 위해 회원 대부분이 150만원~200만원 상당의 캠코더를 구입하기도 했다.
자연히 이들의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5년 전만 해도 컴퓨터 전원 끄는 법을 몰라 쩔쩔맸던 김지연씨는 전자앨범과 스위시 전문가로 불리며 수업시간에 도우미 역할을 자청했다. 출석도장을 찍은 지 갓 3개월 된 '새내기 회원' 김종수(60)씨는 "3개월 만에 50개 정도의 '작품'을 만들었다"며 "고전무용을 하는 아내를 위해 UCC를 만들고, 최근 다녀온 한산도 여행 사진을 모아 동영상으로 보여줬더니 손주들이 좋아해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부르면 어디든 찾아가 UCC 제작UCC클럽에 매일 두세 건씩 꾸준히 올라오는 UCC는 온갖 장르를 망라한다. 박장춘(73) 회장은 최근 전라남도 남원 광한루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모아 '현대판 춘향전'이라는 UCC를 만들었다. 그는 "남원의 한 식당에 가니 '사랑은 단 하루도 천년이라오'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며 "이 말에 영감이 떠올라 일요일 하루를 꼬박 편집해 이 동영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UCC클럽의 '막내' 최승옥(41)씨는 주로 아들의 태권도 시합 장면을 화면에 담는다. 최씨는 "시아버지가 동영상을 찍고 내가 편집한다"며 "아들뿐 아니라 태권도장 관장님도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UCC제작은 이제 취미활동을 넘어 '봉사' 단계까지 나아갔다. 복지관이나 회갑잔치를 찾아 무료로 영상 자료를 제작해주는 것. 박 회장은 "군포의 문화 르네상스를 창출하자는 꿈을 가지고 있다"며 "이를 위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연락을 주면 어디든 찾아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