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천석·주필(主筆)
"북한은 좁은 국토에서 핵실험 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
북한을 미친 나라로 대하나 미친척 하는 나라로 대하나"
대한민국이 아슬아슬하다. ‘나라 안 소용돌이’와 ‘나라 밖 회오리바람’이 맞물려 돌아가며 나라를 옥죄는 듯한 모습은 80년 이래 처음 본다. 대통령직을 물러난 지 15개월밖에 안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 마을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이 소용돌이를 몰아오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차려진 빈소에는 100만명 이상의 남녀노소 조문객이 다녀갔다. 빈소에 서민 대통령을 잃은 슬픔·아픔·그리움만 가득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 동지와 이념적 피붙이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에 실망하고 분개한 국민들은 그들에게서 노 전 대통령을 앗아갔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세력에 대한 분노·원한·적개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나라 밖 회오리바람의 진원지는 매일·매주·매달 귀에 가까워지는 듯한 북한 김정일 군사위원장의 군화(軍靴) 끄는 소리다. 김 위원장이 ‘인민군 총참모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판문점대표부’로 입을 바꿀 때마다 소리는 거칠어지고 내용은 불길해지더니 이젠 태연스레 선전포고를 입에 올릴 지경이 됐다. 김 위원장은 말로 끝내지 않는다. 말로 바라는 반응을 얻을 수 없으면 불쾌감과 적개심을 행동으로 표시해왔다.
북한은 개성공단 통행제한·인력축소·현대아산 직원 체포·개성공단 사용료 인상 요구·미국 여기자 2명 체포·단거리 미사일 발사·대륙 간 탄도탄(ICBM)발사 그리고 마지막엔 2차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미리 정해진 기차 시간에 맞추듯 행동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에게 조전(弔電)을 보냈다고 발표한 뒤 채 4시간도 안 돼 핵실험 단추를 누르는 북한이다. 미국에만 온 신경을 쏟는 북한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이란 남쪽 정세 급변도 아무런 일정 변경의 사유가 될 수 없다.
젊은 사람들은 애초부터 모르고, 건망증이 심한 사람들은 이미 잊었겠지만 김 위원장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수도 랑군에서 한국 대통령을 수행한 대통령 비서실장·부총리·장관·차관·언론인 등 17명의 수행원 목숨을 빼앗은 아웅산 묘지 테러사건, 19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을 태운 민항기를 벵골만 위에서 폭파 격추시킨 KAL기 테러 사건 등은 모두 김 위원장이 사실상 북한을 완전 장악한 이후 벌어졌던 일이다.
그러고도 태연자약하게 인자한 웃음을 얼굴에 띄울 수 있는 김 위원장이다.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에 대한 북한의 선전포고 운운이 그냥 으름장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커가고 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남쪽은 아무 뾰족한 대응책이 없으리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서양 외교관들은 정치·사회적 사건이 연속 폭발하던 1980년대의 한국을 ‘아침마다 놀라게 하는 나라(country of morning surprise)’라고 불렀다. 그 서양 외교관들은 요즘 와선 북한이 오늘 대륙 간 탄도탄을 쏘아도, 내일 핵실험을 해도 끄떡도 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 모습에 혀를 내두른다. ‘대단한 담대함’인지 ‘병적 무감각’인지 당혹스럽다는 것이다. 두려워할 줄을 모르면 언젠가는 두려운 사태와 맞부딪친다. 두려움을 안다는 것은 비겁함과는 다른 차원이다. 두려워할 줄 알아야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와 지혜도 발휘할 수 있다. 두려워할 줄 아는 감각이 마비돼 가는 듯한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이 두려워지는 이유이다.
‘노무현 소용돌이’나 ‘김정일 회오리바람’이 서로 만나 위로 회오리치고, 아래로 소용돌이칠 경우 대한민국의 지붕과 벽이 함께 날아갈 수 있다. 우리 경제도 거의 자동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코리아 리스크’에 휘말리게 된다. ‘서울은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50km 안팎에 있다’고 대놓고 협박하는 북한은 이 약한 대목을 누르고 있다. 남북관계에선 백번의 사후(事後) 응징이 한번의 사전(事前) 억제만 못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의 요체는 북한에 예의범절을 가르쳐 반듯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장한 포부이긴 하지만 그 효과는 우리가 지금 온몸으로 겪고 느끼고 탄식하고 있는 그대로다. 북한은 면적 12만㎢밖에 안 되는 자국 영토 안에서 태연스레 연거푸 지하핵실험을 하는 나라다. 국가 지도자가 국민 안위(安危)를 이렇게 아랑곳하지 않아도 무사한 나라는 세계에 북한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저준위 핵폐기물 보관장소를 구하지 못해 10년을 끌고 다녔다. 이런 대한민국에 살면서 국민 발아래서 아무렇지 않게 핵폭탄을 터뜨리는 김정일위원장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 과욕(過欲)이다.
21세기에 할아버지에서 아들에게, 아들에서 다시 손자에게 권력이 상속되는 나라를 정상적인 나라로 불 수 있을까. 비정상적 상대에게 정상적 행동을 가르치겠다는 사람은 비정상이라는 취급을 받는다.
이명박 정부의 15개월간의 대북정책도 이제 북한이 정말 미친것인지 아니면 그냥 괜히 미친척 하는 광인전략(madman strategy)을 쓰고 있는 것인지 하는 관점에서 재검토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