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피해 예방책" 명분 카스 구도심 재개발 착수
"이슬람 역사·문화 붕괴" 주민들 위기의식 고조
중국 정부가 지난 2월부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전통 이슬람 도시"로 불리는 북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카스(喀什·카슈가르) 구시가지에서 위구르 전통 가옥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22만명(도시 인구 42%)이 사는 구시가지의 건물 85%를 부수고 현대식 건물·상가로 재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곳에 살던 위구르인들은 빚을 얻어 정부가 세운 아파트로 이주해야 한다. 정부는 "흙과 나무로 지어진 전통 가옥이 지진·화재 등 재난에 취약하기 때문"이라지만, "위구르 역사와 문화를 파괴할 또 다른 재앙"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카스는 위구르인들이 번영과 쇠락을 거듭하며 2000년 넘게 살아온 고대 실크로드 무역의 중심도시. 위구르는 20세기 초 두 차례 독립한 적이 있지만, 1949년 공산 중국에 병합돼 현재에 이르렀다. 중국의 위구르 탄압은 악명 높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2005년)에 따르면, 위구르인은 대부분 무슬림이지만 18세가 되기 전에는 모스크 출입 금지다.
교사는 수염을 못 기르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히자브(이슬람식 스카프)를 쓸 수 없다. 한족 인구는 1949년 병합 당시 6.7%였지만, 공격적 이주 정책 탓에 지금은 40% 넘게 치솟아 위구르 민족 공동체를 위협한다. 분리독립운동은 '테러리즘'으로 규정돼 탄압 대상이다.
- ▲ 중국 북서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카스(喀什)에서, 한 소녀가 중국어와 현지 언어로‘철거’라고 적힌 낡은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진 위험을 이유로 카스 구시가지의 위구르 전통 주택 중 85%를 철거하려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웹 여행저널‘어밴든 더 큐브’
이런 상황에서 위구르인들의 위기감은 카스 구시가지 철거로 더 심화되고 있다. 한 여성 주민(48)은 "정부는 우리가 한족처럼 살길 원하지만, 위구르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또 다른 주민 하지(56)는 "500년 전 조상들이 지은 우리 집이 갑자기 재난에 취약해졌느냐"고 물었다.
이곳 주민들은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공동체 속에 살면서, 연간 150만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에게 수공예품과 전통 음식을 팔아 생계를 이어왔다. 집을 버리라는 건, 생업을 버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 시민단체 '베이징 문화보호센터'는 "카스 철거 계획은 문화·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어리석고, 위구르 인의 관점에서 보면 잔인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스위스의 싱크탱크 국제관계·안보네트워크(ISN)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구시가지는 위구르인들에게 문화의 요람이자 자신들의 역사가 구현된 모습"이라며 "철거민 이주 아파트를 구시가지에서 최소 8~9㎞ 떨어진 곳에 지은 것은 위구르 문화를 희석시키고 정부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카스 시(市)정부는 "구시가지는 지진이 덮치면 건물 붕괴로 수천명이 죽을 수 있는 특급 위험 지역"이라며 "정부가 시민을 재해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카스에서는 1902년 리히터 규모 8.0의 지진으로 주민 667명이 숨졌다. 작년 10월엔 불과 160㎞ 떨어진 곳에서 리히터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27일 "지역 TV는 밤마다 지진 현장의 참상과 신축 아파트 앞에서 춤추며 기뻐하는 위구르인들의 모습을 번갈아 담은 15분짜리 홍보성 광고를 내보낸다"고 전했다. 3년간 카스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는 미국인 조시(Josh)는 자신의 블로그에 "건물에 '철거 대상' 이라고 쓰인 걸 보면 형 집행을 기다리 는 사형수 같다"고 썼다. 베이징사범대 우뎬팅(吳殿廷) 지역개발학 교수는 WP에 "위구르 문화가 깃든 집들이 파괴되면, 위구르 민족의 문화도 함께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