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서성대는 세월/ 이 휘사

푸른물 2014. 9. 26. 07:08

 

 

서성대는 세월

막걸리 병 잡은 채로 서성대는 세월 속에
강 언덕 초가집에 이 한 몸 붙이고 사네.

자갈밭에 보리를 심었으나 가을까지 비 안 오고
낡은 통발에 물고기 잡으려니 밤하늘엔 별이 총총하네.

힘없는 선비라서 글은 많이 실의에 젖어있고
야인의 처지로는 육신을 써서 생계를 꾸려야지.

간절하게 거문고 탄들 누구에게 들려주랴?
흐르는 물소리만 푸른 산 속에 허허롭네.



逍遙

時日逍遙濁酒甁(시일소요탁주병)
江皐棲托白茅亭(강고서탁백모정)
石田種麥秋無雨(석전종맥추무우)
弊笱收魚夜有星(폐구수어야유성)
匹士文章多失意(필사문장다실의)
野人生理合勞形(야인생리합로형)
琴絃耿耿要誰聽(금현경경요수청)
流水冷冷虛翠屛(유수령령허취병)

취송(醉松) 이희사(李羲師·1728~ 1811)가 마음속 갈등을 드러냈다. 여기도 저기도 굳게 발붙이지 못한 채 서성대는 인생에 대한 갈등이다. 강 언덕 초가집에 살고는 있으나 방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주 술에 기댄다. 농부라 하자니 농사일은 서툴고, 선비라 하자니 그 노릇도 만만치 않다. 드높은 꿈과 하찮은 생계 사이에 서성대며 가을날 이 밤 실의에 젖는다. 거문고로 절실한 속내를 펼쳐 위로라도 받고 싶지만 누가 들어줄까? 넋두리인 듯 물소리만이 빈산을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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