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촌야(村夜)-백거이(白居易)

푸른물 2013. 10. 31. 06:26

 

촌야(村夜)-백거이(白居易)

시골의 어느날 밤-백거이(白居易)

霜草蒼蒼蟲切切(상초창창충절절) : 서리맞은 풀 무성하고 벌레소리 절절한데

村南村北行人絶(촌남촌북행인절) : 마을의 남과 북에 사람의 발길 끊어졌구나

獨出門前望野田(독출문전망야전) : 홀로 문 앞에 나와 들밭을 멀리 바라보니

月明蕎麥花如雪(월명교맥화여설) : 달빛이 밝아 메밀 밭의 메밀꽃이 눈처럼 희도다


<감상1>-오세주

시인 백거이는 철저하게 백성의 처지에 선 작가다.
다루는 내용이 백성의 희로애락을 다룰 뿐만 아니라
표현 또한 글을 잘 모르는 백성이
듣기만 해도 시의 뜻을 짐작할 수 있을 때까지 글을 다듬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시 정신에 투철한 작가로 볼 수 있다.
흔히 시인은 위정자의 울타리 아래서 안주하는 연약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고, 한 술 더 떠서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매문의 지경까지 가는 겨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시는 "임금, 신하, 백성, 사물을 위하여 시를 지은 것이지 문체를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니다",고 하고 또 "윗사람은 풍(風)으로써 아랫사람을 교화하고, 아랫사람은 풍으로써 윗사람을 풍자해야 한다."는 정신에 입각하여 정치와 사회를 비판한 <풍유시> 172수를 짓고 그것에 최고의 평가를 부여한 시인이었다

이러한 시정신을 지닌 백거이는
하나의 자연 풍경에도, 그의 시정신이 실현된 평화롭고 조화로운 순수한 세계를 발견하려 하였다
이 시는 그러한 그의 순수한 시정신을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자연시이다

1구를 보자
霜草蒼蒼蟲切切(상초창창충절절) : 서리맞은 풀 무성하고 벌레소리 절절한데

계절은 초가을인가보다
서리 맞은 풀(霜草)이 아직은 무성히 우거져있다(蒼蒼),
풀벌레도(蟲) 추위를 예감하는 듯 마지막 울음소리를 울고 있다(切切)
그치지 않는 즐즐한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표현에서 시간은 가을 밤으로 여겨진다
가을밤의 풀벌레 소리는 서글퍼게 느껴진다.
만물이 울창한 여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는 소리다
늦여름 초가을의 짙은 풀빛은 여름 여왕의 마지막 행진의 짙은 화장이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방만한 여름의 종말과 결실을 위한 가을의 시련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한다

2구를 보자
村南村北行人絶(촌남촌북행인절) : 마을의 남과 북에 사람의 발길 끊어졌구나

날은 어두워진다
이미 차거워진 저녁 바람에
사람들은 일찍 집으로 들어 남촉 북촉(村南村北) 어디에도 인적이 드물다(行人絶)
인적이 사라진 들판에는 오직 들리는 것은 풀벌레 소리, 바람소리다
여름의 신과 가을의 신이 임무 교대를 하는 고요하고 엄숙한 밤 시간과 공간이 남아있다

1, 2구에서는
사람은 소외 된채로 어둠을 무대로
풀벌레의 음악속에 여름과 가을이 임무 교대가 이루어지는
신비롭고 엄숙한 공간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은 조그마한 날씨 변화에 눌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밤의 공간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그들의 보금자리 속에 깃들어 있을 뿐이다

3구를 보자
獨出門前望野田(독출문전망야전) : 홀로 문 앞에 나와 들밭을 멀리 바라보니

작가는 어떠한 느낌으로 이러한 공간 속으로 문득 들어오고 있다
혼자 문 앞을 나와(獨出門前) 아득히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望野田)
무엇 때문에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문밖을 나오게 했는지 모른다.
아마, 작가도 모를 런지도 모른다
인적이 끊어진 휑한 들판을 자신도 모르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4구를 보자
月明蕎麥花如雪(월명교맥화여설) : 달빛이 밝아 메밀 밭의 메밀꽃이 눈처럼 희도다

사방은 어두워졌지만 갑자기 달이 떠 올라 사방을 밝아지는 것이다(月明)
하늘 뿐 아니라, 땅도 밝아지는 것이다, 달빛을 받아 더 밝아지는 것이 있었다
갑자기 눈 내린 허연 들판과 같은 것이(如雪) 작가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밝빛을 받은 넓은 메밀밭의 흰 메밀꽃들이었다(蕎麥花).
눈이 내린 듯 소금을 뿌려놓은 듯하였다

3, 4구에서는
우연히 문밖에 나간 작가가
달빛과 메밀꽃이 연출한 훤한 정경에 감탄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햇빛 찬란한 현실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작가가 바라는 이상세계의 출현을 기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늘 꿈꾸어오던
착한 백성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세계가 꿈에라도 나타난 것처럼
눈 앞에 휜히 보인 것이다


이 작품이
작가가 초가을 밤에 우연히 문밖을 나갔을 때
달빛 아래, 은은하게 핀 밀꽃이 이루는 장관을 그린 순수한 자연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경을 시로 표현해야 할 정도로 아름답게 여긴 작가의 의식은
<현실에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을 추구하는 작가의 미의식이 투영되어 빚어진 작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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