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프로 진행 20년… '골든 마우스' 받은 방송인 최유라
거쳐간 남성 진행자만 10여명 전체 라디오프로 중 청취율 1위
"방송에선 나 자신이 편안한 아줌마"
"5년, 10년, 목표를 정해놓고 시작했다면 아마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그런데 남편과 싸우고 친정으로 달려와 속내를 털어놓는 아줌마처럼 편하게 진행을 하다 보니 벌써 20년이 됐네요." 최유라(44)처럼 웃고, 울고, 화내는 감정 폭이 큰 방송인도 드물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TV가 아닌 라디오에서만 20년 넘게 진행을 맡은 것은 더 드문 일이다. 최유라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지금은 라디오시대'(FM 95.9㎒)가 방송 20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프로그램 제목은 물론 남자 진행자도 여러번 바뀌었지만 최유라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난 최유라는 "상대방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하는 자세가 경쟁력이었던 것 같다"며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꾸 내 몸이 낮아진다"고 했다.
- ▲ MBC 라디오 프로그램‘지금은 라디오시대’로 라디오 방송 진행 20주년을 맞은 방송인 최유라. 그는“공교롭게도 IMF 때 우리 프로그램이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며“그만큼‘지금은 라디오시대’에 희로애락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배우가 아닌 방송 진행자를 꿈꾼 유별난 학생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 내 모습보다, 마이크를 잡고 무언가를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렸다"는 그는 대학 시절 우연히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를 계기로 1989년 '정재환 최유라의 깊은 밤 짧은 얘기' DJ를 맡았다. 스물세 살이었다.
편안한 진행이 돋보이지만, 그는 "나처럼 기 센 남자들을 여러 번 상대한 여자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년 동안 거쳐 간 고정 남성 진행자만 10여명. 서세원, 이종환, 황인용, 전유성, 이재용, 조영남(현재) 등 캐릭터가 뚜렷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파트너가 바뀌어도 귀신처럼 맞아떨어지는 호흡 때문에 '최유라가 진짜 여우다'라는 말도 듣는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좀 약은 건데, 제 원칙은 간단해요. '난 못난 사람과 파트너 하기 싫다'는 거죠. 저도 여자인데, 이왕이면 제 파트너가 멋있고 잘나야 제 어깨도 으쓱해지잖아요?" 상대를 빛나게 하는 진행 방식은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할 때도 어김없이 발휘돼, '지금은 라디오시대'를 전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율 1위에 올려놓은 원동력이 됐다.
자신을 "늘 긍정적인 파워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평할 만큼 자신감 있지만, '20년 라디오 진행'이란 꼬리표가 붙은 지금은 어깨도 무겁다. "처음 라디오를 시작할 때부터 'TV보다 더 생생한 라디오, 더 영향력 있는 라디오를 만들자'고 했어요. 먼 훗날 청취자들 기억 속에 '정말 편안했던, 위로가 되던 진행자'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원도 한도 없이 라디오 진행을 해보는 게 꿈이었는데, 웬만한 원(願)은 다 풀었으니 이젠 한(恨) 없이 마무리하는 게 과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