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장애 시인 주경자씨의 특별한 출판기념회
팬카페 회원들이 책 내주고 마을선 조촐한 잔치 열어줘…
"단 하루만 훨훨 날아봤으면" 시인의 딸이 어머니詩 읽자 진도 산골마을 울음바다
"아픈 몸도 다 버리고/나무 지팡이도 다 버리고/가벼운 몸으로/새처럼 자유롭게 하루만 단 하루만/훨훨 날아봤으면."시인의 딸이 어머니의 시를 낭송하자 시인도, 딸도, 시집 출판을 축하하러 온 동네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지난 27일 오후 3시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척추장애 시인 주경자(53)씨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마을 민속전수관은 울음바다가 됐다. '산골여인 주경자의 하루만 날아봤으면'이란 제목의 첫 시집을 냈는데도 형편이 어려워 출판기념회도 열지 못하고 변변한 축하도 받지 못한 주씨를 딱하게 여긴 주민들이 열어준 조촐한 잔치였다.
- ▲ 지난 1일 오후 전남 진도군 의신면 집에서 척추장애 시인 주경자씨가 자기 시집 ‘산골여인 주경자의 하루만 날아봤으면’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심현정 기자
등이 구부정 굽고 다리 근육이 퇴화한 병까지 겹쳐 걸을 수 없는 주씨는 의자에 앉아 주민들에게 일일이 "고맙다"며 막걸리 잔을 권했다. 주씨는 "시집이 나오던 날 책을 꼭 안고 울면서 잠이 들었는디 꿈에서 엄마가 나왔당께"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엄마, 보고 싶었는데 왜 이제 왔어'하면서 꼭 안았더니 씨익 웃고는 사라져부렸제."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어머니가 돌도 안 된 나를 재워 놓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며 "아버지가 '차라리 죽어버리라'며 어린 나를 물 한 방울 안 먹이고 방에 뉘어놨다가 영양실조로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주씨는 "걸을 수 없어 마당을 무릎으로 기어다니는 내게 '저년 기어다니는 것 좀 보라'고 욕지거리를 퍼붓던 아버지가 미웠다"며 "자식을 학대하는 아비가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겠다고 다짐하고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씨는 사춘기 때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여자들을 보면 얼굴이 아니라 발을 먼저 봤어요. 높은 구두 신고 사뿐사뿐 걷는 발걸음을 보며,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렇게 걷고 싶다고 생각했죠." 주씨는 그때마다 '걷지도 못하느니 차라리 죽어'라며 자신을 원망했다.
주씨는 딸을 낳고 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작은 몸뚱어리에서도 소중한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어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항상 아름다운 말, 사랑을 주는 말만 하고 살기로 했습니다."
그런 주씨에게 남편 강금성(50)씨는 '대나무 중매쟁이가 보내준 선물'이었다. "집밖에 나가지 못하는 내가 창문을 열어놓고 부르던 노랫소리가 뒷마당 대나무 바람에 실려 남편이 살던 윗마을 오두막집까지 들렸나 봅니다. 내 노랫소리를 들은 남편이 '밤마다 무슨 노래를 그리 슬프게 부르냐'며 찾아왔던 게 인연이 돼 결혼했습니다."
주씨는 달걀만한 암 덩어리를 안고 산다. 8년 전 가슴 밑에 돌덩어리 같은 것이 잡혀 병원에 갔더니 종양이 생겼다고 했다. 주씨는 "수술을 해야 하지만 몸이 약해 수술 중에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사 말을 듣고 그냥 집으로 왔다"고 했다. 김씨의 유일한 치료약은 남편 강씨가 산에서 캐다 주는 영지버섯과 운지버섯으로 달인 물이 전부다. 남편 강씨도 몸이 성치 않다. 19살 때 저수지 공사판에서 돌을 나르다 다리를 다쳐 얻은 골수염을 지금까지 앓고 있다. 병원에 갈 돈이 없어 스스로 링거 호스를 무릎 피부 안에 찌르고 고름을 뽑아내고 있다. 주씨는 "그런데도 눈만 뜨면 나를 살린다고 약초 캐러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닌다"며 남편을 걱정했다. 몇해 전에는 버섯을 캐다 독사에 물려 손가락 두 마디를 잘라냈다. "남편이 빈혈로 자주 쓰러지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우린 서로 죽을까봐 매일 떨며 삽니다."
주씨는 삶의 곡절을 모두 시로 녹여냈다. 지금까지 쓴 시가 400여 편이나 된다. 주씨가 가끔 인터넷에 띄운 시를 본 사람들이 2003년 인터넷 팬카페를 만들었고 200여 명이 회원이 됐다. 회원들과 방송작가 출신 장애 시인 박원철씨가 지난 4월 500만원을 모아 주씨 시들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이날 주씨는 인사말에서 "하늘을 봤더니 새가 날고, 구름도 날고 나뭇잎은 푸르러서 정말 행복합니다"고 했다. 그의 시 '살아있는 꽃'이 행복을 노래한 것처럼…. "울고 웃는 인생이라/세상을 한탄할 일도 많겠지만/육신이 허술하면 마음으로 살고/마음이 허술하면 육신으로 이기며/살아 있으매/사랑을 노래할 수 있고/살아 있으매/인생을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