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방일영 국악상' 수상자 박송희 名唱
14세 때 권번에서 소리 배워… 임방울 선생과 창극단 공연도
결혼 후 상경해 스승 만나… 무형문화재 '흥보가' 보유자
"'국악계의 노벨상'을 제가 받다니…."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의 '송설당 판소리 전수소'에서 만난 박송희(朴松熙·83) 명창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제17회를 맞은 방일영 국악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다. 그가 앉은 자리 어깨 너머 뒤편 벽에는 스승 박록주(朴綠珠·1905~1979) 명창의 젊은 시절 사진이 붙어 있었다. 왼손을 살짝 뺨에 댄 젊은 날의 스승도 나이 든 제자의 경사(慶事)를 축하하는 듯했다. 박 명창은 스승 얘기부터 꺼냈다.
◆스승 박록주 명창
"1963년쯤 소리를 배우고 싶어 선생을 찾아갔어요. '소리를 배우고 싶은데, 돈이 없습니다' 했더니 스승은 '소리 공부하는 데 돈이 무슨 필요가 있노. 소리만 잘하면 됐제' 하시더군요."
- ▲ 올해 방일영 국악상 수상자인 판소리 명창 박송희 선생은“스승 박록주 명창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스승은 통이 컸다. "당신 집에 박봉술 선생을 불러 저에게 '적벽가'를 배우게 했습니다. 보통 자기 제자가 다른 사람에게 배우는 걸 싫어하는데 선생님은 달랐어요. 치마만 둘렀지 장부였습니다."
◆소리 입문
박송희 명창은 열네 살 때 전라도 광주 권번(券番)에서 판소리, 가곡, 가사, 승무, 꽃춤을 배웠다. "소리를 배우면 살기가 낫다"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전통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 역할을 했던 권번을 졸업한 뒤 1944년 '동일창극단'에 들어갔다. 임방울·이동백·송만갑 등 쟁쟁한 명창들과 함께 공연을 다녔다.
- ▲ 스승 박록주 명창(오른쪽)을 사사할 당시의 박송희 선생(왼쪽에서 두 번째).
"정신대에도 안 끌려간다고 해서 이북의 원산·청진까지 공연 다녔어요. 열아홉 살 때 극단이 만주까지 간다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광복 후엔 고흥 출신 송영석과 함께 시골을 돌며 계몽운동 차원에서 안중근·이봉창·윤봉길·민영환·이준 선생을 기리는 소리를 불렀다. 고향 집에 논 두세 마지기 보태줘 '효녀'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임방울·김소희·박봉술과의 인연
결혼 후 몇 년간 순천에서 지내던 박송희를 서울로 불러올린 것은 임방울(1904~1961)이었다. "이동백 선생이 돌아가셨으니 추모 공연을 하자고 불렀어요. 스물하나에 올라와서 주저앉아 지금까지 온 겁니다." 임방울이 하던 창극단 협률사에도 다녔다. "당시엔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는데, 임방울 명창은 워낙 소리가 우렁차서 천막 밖에까지 다 들렸어요. 덕분에 표가 안 팔렸지요."
그는 1950년대 여성국극 동호회에 참여했고, 새한국극단·햇님국극단 주연으로 활약했다.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63년부터다. 김소희 선생에게 '춘향가' '심청가'를 배웠고, 박록주 선생에게 '흥보가' '숙영낭자전'을, 박봉술 선생에게 '적벽가' '수궁가'를 배웠다. 1970년대엔 TV와 라디오의 국악 프로그램에 자주 불려나가 출연료로 쌀과 연탄을 사서 생계를 꾸렸다.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12년간 일했고 '흥보가' '숙영낭자전' 음반 취입과 창극 '흥보가' 작창(作唱)도 해냈다.
◆영원한 현역
박송희 명창이 스승의 뒤를 이어 '흥보가' 보유자가 된 것은 2002년 나이 일흔다섯 때였다. "인간문화재가 되려고 소리 배운 것도 아니고, 보유자 됐다고 소리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명창은 무심하게 말했다. 그는 일흔일곱이던 2004년에도 '흥보가' 완창 무대를 가졌고, 작년 10월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박송희 예술인생 70주년 기념 공연'에서 단가(短歌)와 창극 '춘향가', 육자배기를 불렀다.
박송희 명창에겐 올해 경사가 겹쳤다. 두 달 전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제18회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명창부문에 출전한 제자 채수정씨가 '방일영상'을 수상한 것이다. 박 명창의 전수소 한쪽에는 채씨가 받은 상장이 놓여 있다.
인터뷰 말미에 박 명창은 스승이 세상을 떠나기 전날 남긴 글에 자신이 곡을 붙인 단가 '인생백년'을 들려줬다. "인생백년 꿈과 같네… 청춘 세월을 허망히 말고, 헐 일을 허면서 지내보세" 올해 여든셋의 명창은 여전히 할 일 많은 '현역'이었다.
●박송희 명창이 걸어온 길
▲1927년 전남 화순 출생
▲박록주·김소희·박봉술 명창에게 사사
▲1950~1955년 햇님국극단·새한국극단 주연
▲1976년 '흥보가' 완창 발표
▲1983~1995년 국립창극단 단원
▲1995년 '숙영낭자전' 완창 발표
▲200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 지정
▲KBS 국악대상·제13회 동리대상 수상, 보관(寶冠)문화훈장 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