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지향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수십년 압축 성장기에 큰 죄의식 없이 많은 사람의 손 더럽혀
져떳떳하게 돌 던질 사람 몇이나 있나… 선심정책 아닌 법치 세워야
공정사회라는 구호는 만병통치약인 것 같다. 하락하던 대통령의 인기가 상승하기 시작했고 다음 대선에서는 그 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예견도 많다. 공정성은 철학적·사회적 이슈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학생들 성적을 결정할 때 공정성을 생각하게 되고 내심 갈등을 겪곤 한다. 능력이 있으면서 열심히 노력한 학생이 가장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노력했지만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답안지대로 점수를 주지만 어쩐지 공정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남고, 정치철학자 존 롤스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정의론'에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개인의 미덕 덕분이 아니라 운(運)이기 때문에 그 성과는 개인이 아닌 공공(公共)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롤스는 결과의 평등을 주장한 게 아니지만 공정성의 문제를 좀 더 과격한 시각에서 제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무엇이 진정 공정한가는 이처럼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공정한 사회를 이루는 지름길로 대폭 확충된 복지예산을 포함한 서민정책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정치적 효과를 얻을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다.
우선 그런 식으로 공정사회를 구현하려는 작업에는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 필요하며 그 돈은 결국 세금이나 정부 빚으로 채워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많은 사람에게 조금씩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는 구상은 좌파 교육감들이 들고 나온 무상급식과 다를 바 없는 대중 영합주의라는 것이다. 특히 보육가정의 70%를 지원하겠다는 발상이 그러하다. 그보다는 진정 도움이 필요한 최저소득층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는 것이 옳다. 지금의 구상은 도덕적 해이와 예산 집행의 낭비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공정사회 구현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큰돈 들이지 않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바로 법치의 확립이다. 법의 공정성을 구현하는 데는 가욋돈이 들지 않는다. 최근 국무위원 후보자나 유명 인사들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은 가장 큰 이유도 그들의 위법행위이다.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위법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모든 시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에도 들어맞는다. 그러나 권력 근처에 어른거리는 사람들은, 조지 오웰의 풍자처럼,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평등한 것 같다(more equal than others). 때마다 특별사면의 혜택을 입는 정계·재계 인사들이 대표적이다.
공정하지 못하던 사회에서 공정사회로의 이행은 결코 단순하거나 쉬운 과정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의 압축 성장기에 큰 죄의식 없이 많은 사람의 손이 더럽혀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현 정부가 '겨우 그 정도'를 놓고 너무 심하게 몰아붙였다고 비난한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수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
청문회에서 호령하는 의원들 가운데 예수의 말대로 떳떳하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말끝마다 민주화를 외치면서 정부 일에 어깃장을 놓는 단체들의 간부급 가운데에도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당장,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는 어느 386세대 정치인이 생각난다. 이렇듯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불공정성을 청산하려면 관용과 용서의 단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밝힐 것은 분명히 밝힌 다음 용서할 것은 용서해야 새 시대의 기준을 엄정하게 세울 수 있다.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유치한 쇼가 되어버린 청문회도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제시해주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정부는 돈을 풀어 국민의 선심을 사는 것에만 치중하지 말고 제대로 된 가치관과 법치의 확립을 통해 공정사회를 구현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국민은 나만 피해자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남을 이해하고 앞장서서 공공선(公共善)을 실천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공정사회가 도래하는 날도 빨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