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 서수찬( 1963 ~ )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지를 들추어내자
만 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 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 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트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장판 아래 숨겨놓은 비상금을 깜박 잊은 채 이사를 간 가계가 있었나 보다. 그들의 망각이 새로 들어온 가계의 심란한 주름살을 활짝 펴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만 원 한 장의 이 소박한 횡재가 아름다운 것은 다음 가족을 위한 위안거리를 준비하는 부부의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게다. 시인은 무언가를 다 소유하지 않고 머물 줄 아는 마음을 얻게 된 것이야말로 가장 큰 횡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목련에 긁힌 상처투성이 가구에서 목련 향이 난다고 하는 아내처럼 우리의 가난과 상처에도 향기가 밸 수 있다면 좋겠다. <손택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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