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살아 있다는 느낌 - 이윤택(1952~ )

푸른물 2010. 10. 13. 05:42

살아 있다는 느낌 - 이윤택(1952~ )

(전략)

월말까지 밀린 원고를 써야 하기 때문에

사랑할 시간이 없다

죽고 나면 비극적인 사랑의 느낌까지 지워지기 때문에

자살할 수도 없다

술을 마시면 비극

글을 쓰면서 자살을 꿈꾼다

나어린 여배우들 엉덩이나 툭툭 치면서

연애를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여편네에게 전화를 하고

집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행복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한 소년의 마음에

공중누각을 세우게 했던 별의 순행

저것이 영생을 가리키는 상징이란 말인가

(중략)

삼십 년이 걸려 쌓은 누각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사랑할 수 없고 자살할 수도 없다

살아있다는 느낌만 새파랗게 남았다

이 느낌을

전진하는 시간의 화살 위에 놓는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존재의 심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멀리 있는 과녁이 보인다. 그게 바로 자신이다. 허무에 녹슨 날을 벼려 새파랗게 살아나는 빛을, 그 과녁을 향해 날린다. 촉이 과녁에 꽂히는 순간, 온 우주가 부르르 떨 것이다. <손택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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