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詩 쓰다 음표까지 그리게 됐네요"이석호 기자 yoytu@chosun.com 기자의 다

푸른물 2010. 10. 9. 06:35

詩 쓰다 음표까지 그리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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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8.06 23:54

'동요음반 낸 화가' 정탁영 前 서울대교수
故 박수근 화백 기리는 동요 "노래 녹음하니 무대 선 기분"

지난 5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에서 만난 정탁영(72·전 서울대 교수) 화백은 "노래부터 들어봐요"라며 오디오를 켰다. 어린이의 맑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덕 위 마을에 봄이 왔네요/빨래터 아낙네 웃음 나누고/초가집 연기 속 잠자는 마을에/향기로운 봄처녀 찾아왔네요.'

정 화백은 자기가 작사·작곡한 동요 '정림리 마을에 봄이 왔네요'를 들으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그는 "노래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춤을 추게 된다"며 "이불 속에서 흥얼거리던 내 노래에 반주를 넣어 녹음하면 마치 무대에 선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탁영 화백. /이석호 기자

그는 최근 이 노래를 독창·합창·느린 곡·빠른 곡·반주곡의 5개 버전으로 녹음해 CD 한 장에 담아 음반을 냈다. 평소 존경하던 고(故) 박수근(1914~1965) 화백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다. 제목 속 강원도 양구군 '정림리'는 박 화백의 고향이다. 박 화백 타개 45주년을 맞아 정 화백이 양구군 후원을 받아 봉정(奉呈) 동요음반 500여장을 제작했다.

그는 그림 그리는 화가이면서 평소 시(詩)를 좋아했다. 4년 전 심장수술을 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병간호로 고생하던 부인 안형주(61)씨를 위해 '이 마음 변치않고 살아가리라/한결같은 그대 마음 간직하리라'라는 구절이 담긴 시 '아내 얼굴'을 지었다. 19세에 시집간 누님을 생각하며 '마루 끝 우산에도 누나의 얼굴/구겨진 빨래에도 누나의 손길'이라는 내용으로 '누나 얼굴'을 썼다.

정 화백은 시 내용과 어울리는 멜로디가 떠오를 때마다 휴대전화 녹음 기능을 활용해 녹음했다. 집 2층 창고에 있는 피아노에 앉아 서툰 실력으로 건반을 눌러 음계를 찾아내 악보에 옮겼다. 이를 알게 된 지인들이 음반 제작을 권했고, 소개받은 음대 대학원생들과 동요대회 입상 경력을 지닌 어린이의 도움을 받아 생애 첫 음반을 만들었다.

정 화백은 "'콩나물(음표) 잘 그리신다'면서 주변에서 용기를 주니까 음반까지 낼 수 있었다"며 "제작비를 모아 내년엔 다른 곡들을 녹음해 음반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