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에 놓인 노인 환자] [2] 요양 시설에 버려지는 노인 환자들
노인이 사망해도 가족과 연락 안돼 장례 못치러
"버려진 노인환자들을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 구축 필요"
최인순(가명·80) 할머니는 2년 전 막내아들 손에 이끌려 경기도 포천 A요양원에 들어갔다. 중풍을 앓는 최 할머니는 혼자서는 식사를 하지 못하고 대·소변도 못 가리는 중증 환자다. 막내아들은 작년 7월 요양원에 전화해 "곧 어머니 뵈러 갑니다. 잘 부탁해요"라고 말한 뒤 연락이 끊겼다. 월 50만원인 요양원 이용료도 1년 넘게 입금되지 않고 있다. 요양원 운영자는 "우리야 밥상에 밥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지만, 어르신이 아들을 너무 그리워해 안타깝다"고 했다. 할머니는 오히려 "내가 돈을 벌지 못해 아들에게 돈을 보낼 수 없으니 걱정"이라며 밥을 넘기지 못했다.◆부모 맡기고 연락 끊는 자식도
지난 14일 오후 전남의 B노인요양원에는 이순자(가명·87) 할머니가 병실 침대에서 눈을 감은 채 온종일 누워 있었다. 이 할머니는 올해 초 가족들과 함께 입소했지만, 그 뒤 가족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장기요양보험 1급인 할머니는 치매와 노환으로 혼자 움직이지 못한다. 가끔 할머니는 "전 재산을 큰아들에게 물려줬는데 아들이 다 탕진했어"라고 중얼거렸다. 요양보호사는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가족들이 안 오는 걸 보면 뭔가 문제가 있는 가정인 듯하다"고 말했다.
- ▲ 4일 전남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휠체어를 탄 노인들이 요양사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마당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사설 요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던 최모(50)씨도 "1년에 한 번꼴로 찾아와 연말정산하듯 돈만 내고 가는 보호자들도 많다"며 "어르신 얼굴도 제대로 안 보면서 이용료 깎아 달라고 사정하는 자식도 있었다"고 말했다.
올 6월 보건복지부가 전국 노인 67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3.8%의 노인이 가족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응답했고, 그중 3%는 "자식에게 버려졌다"고 답했다. 학대한 가족의 50.6%가 자녀였다. 요양원 관계자들은 "병든 부모를 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255만2000원이었다.
◆보호자 찾아오지 않아 우울증
요양시설에 입소한 노인이 나이가 많을수록 자식들이 면회가는 빈도는 더 낮다. 경기도 양평의 한 요양원 관계자는 "80~90세의 노인들은 자녀도 60~70대인 경우가 많다"며 "이런 자녀는 자신도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자주 찾기 어려우신 듯하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의 한 요양원 관계자도 "가족 중 환자를 돌볼 사람이 없거나, 돌볼 여력이 없는 이들이 노인을 시설에 맡기지 않겠느냐"며 "이러다 보니 보호자와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있고 연락이 된다 해도 1년에 한두 번 겨우 찾아오는 보호자도 적지 않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요양원을 운영하는 김정훈(가명·56)씨는 "버려진 노인 환자들은 결국 시설 운영자가 손해를 보더라도 감싸 안는 수밖에 없다"며 "이런 노인분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해서 인간답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요양원에서 간병 봉사활동을 하는 김모(46)씨는 "가족들이 자주 찾지 못하는 노인 환자들은 그리움과 외로움에 더욱 시달린다"고 했다.
외로움은 우울증을 낳고 우울증은 자살을 부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8년 노인들의 우울증 경험 비율은 27.1%였고, 이 중 홀몸 노인은 41.7%에 이르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80대 이상 노인은 1000명이 넘었다.
심현보 북부노인병원 정신과 과장은 "치매나 중풍 등 병세를 비관하다 우울증이 되기도 하고, 병으로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돼 우울증이 올 수 있다"며 "노인 자살자들의 85%가량은 우울증을 같이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