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획위가 제안한 '저출산 대책'
남성 육아휴직 장려, 복수국적 허용범위 확대, 싱글맘 차별 철폐 등 제시
구체적인 실천계획 없어… 말잔치로 끝날 가능성도
저출산 대책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300여가지 대책이 나오는 등 과거 정부에서도 단골 정책 메뉴였다.25일 미래기획위원회가 발표한 저출산 대책이 과거와 다른 점은 ①저소득층 위주에서 중산층으로 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②보육 지원 정책에서 일·가정 양립 정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③지난 정부에서 손대지 않은 개방적 이민 정책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 등이다. 돈(예산)을 포함, 정부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역대 정부에 비해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계획이 없다는 점에서 '말만의 성찬(盛饌)'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미래기획위 주최 '1차 저출산 대응 전략회의'에서 "저출산 상황은 과거와 같은 속도로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10년 정도 공들여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식의 (안이한) 인식으로는 안 된다"며 "초국가적으로 (대책을) 검토해 과감하게 결단하고 조치를 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08 세계 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아이 수)은 1.20명으로 조사 대상국 156개국 중 꼴찌(홍콩 0.96명)에서 두 번째다.
- ▲ 어떻게 하면 여성들이 아기를 낳고 싶어질까.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서울 광진구 서울여성능력개발원에서 열린 미래기획위원회 6차 보고회에 참석해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백희영 여성부 장관 등과 함께 저출산 극복 방안 등에 대해 토론했다./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날 미래기획위가 내놓은 제안은 크게 5가지다. 우선 보육비를 줄여주는 차원에서 취학연령을 1년 낮추는 안을 제시했으나 이날 회의에서 기존 유아교육기관의 고사(枯死)론 등 반론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둘째, 다자녀 가구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방안으로, 다자녀를 둔 부모의 정년 연장 등을 내놓았다. 정년연장은 공기업부터 우선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키로 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형평성 차원에서 우려할 만한 부분도 있으므로 내년에 차분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대학입시와 취업에서 우대하는 방안, 고교·대학 학자금을 우선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셋째, 일·가정의 양립 정책은 남성의 육아휴직 활용 장려, 임신·출산 여성을 우대하는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방안 등이다. 곽승준 위원장은 이날 "오늘을 남성들이 반성하는 날로 정하자"면서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확실하게 해서 남녀가 공동으로 육아를 책임지는 시대를 열자"고 했다.
넷째, 다양한 가족형태를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임신한 청소년의 자퇴 강요를 하지 않는 등 싱글맘에 대한 각종 차별 철폐, 낙태 줄이기 캠페인, 한 부모(부모 중 한명과 자녀가 사는 가정)에 대한 직업교육 기회 우선 부여 등도 제시했다.
다섯째, 개방적 이민 허용을 통한 해외 우수인력 유치, 복수국적 허용범위 확대 등 '한국인 늘리기 프로젝트'도 테이블 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날 발표는 추진 '방향'만 있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구체적인 액션플랜(실천계획)이 없다. 보건복지가족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자문기구에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며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예산 문제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저출산 대책은 특효약이 없고, 프랑스처럼 파격적인 예산을 투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큰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대책포럼 위원장인 김두섭 한양대 교수는 "효과와 효율성을 충분히 검증해 정책으로 내놓아야 하는데 취학연령 1년 단축 등 아이디어를 덜컥 정책으로 내놓은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며 "제목만 나열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박사는 "5세 조기 입학이나 일·가정 양립 정책 추진 등은 시대에 맞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며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부처 간, 이해당사자 간 진통이 있을 수 있고 예산 문제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이날 이 대통령과 관계부처, 전문가들이 합동으로 참석한 회의에서도 각종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지만 당장 시행하기로 결론이 난 것은 적었다. 이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나라가 재정적으로 지원해 부모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라며 "관계부처와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문턱을 낮추고 난상토론을 벌여 결론을 도출해 달라"고 회의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