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수도권I] [경기도에 사는 프리미엄] 그 안에는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푸른물 2010. 9. 10. 07:38

수도권I] [경기도에 사는 프리미엄] 그 안에는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산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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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08 22:43

[경기도에 사는 프리미엄] 수원 화성을 곰곰이 돌아보자
보면 볼수록 신비한 광경 선현들의 지혜가 스며 있어 화성열차·시티투어 이용을

수원 사람들조차 가끔 이 성이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지 잊어버린다. 문득 존재감을 느끼는 것은 대개 어느 화창한 날이다. 부드럽게 도시를 감싸안은 성곽은 하늘이 푸를수록 눈에 띈다. 옛사람들이 벽돌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구조물을 보면 누구든 알아차린다. 화성(華城)은 수원의 핵심, 수원의 영혼이란 사실을.

사적 제3호인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런 '브랜드'가 없어도 역사를 들여다보면 화성의 가치는 금세 알 수 있다.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대왕은 정약용·채제공·김홍도 같은 지식인과 예술가를 모아 당대 최고 기술로 화성을 지었다. 국내외 성곽 양식의 장점도 집약했다. 일차적 이유는 아버지 장조(莊祖·사도세자)의 능을 양주군 배봉산(현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지금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화산(花山)으로 이장하기 위해서였다. 화산 아래 살던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수원시 팔달산 아래를 고르고, 그 땅에 화성을 축조했다. 그래서 수원을 "최초의 계획된 신도시"라고도 평가한다.

화홍문 아래 7개 홍예문을 따라 흘러내려오는 물줄기를 칠간수(七澗水)라 부르는데, 정조는 이곳 물이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을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 칭하며 수원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화홍문 오른쪽 언덕 위에 방화수류정이 보인다.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
화성 건설엔 또 다른 목적도 있었다. 첫째는 임진왜란을 치르며 문제가 드러난 수도 이남의 방어력 강화였다. 둘째는 정조대왕이 꿈꿨던 개혁정치를 펼칠 새로운 장을 마련하려는 의도였다. 정조가 화성을 완공한 지 4년 만에 48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며 그 비전은 실현하지 못했지만, 수원 화성엔 그 뜻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벽돌로 쌓아올린 우아한 아름다움

수원시내에 들어서면 동서남북 어디로 달리든 화성을 만날 수 있다. 장안문(長安門·북문)·팔달문(八達門·남문)·화서문(華西門·서문)·창룡문(蒼龍門·동문) 같은 성곽의 주요시설은 현재 수원에서도 주요 거점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아무데로나 가면 화성을 볼 수 있다고 표현하긴 어렵다. 팔달문은 주변 성곽과 연결되지 못한 채 혼자 도로 한가운데 덩그마니 남아 있다. 이래서야 화성을 처음 찾는 사람에게 그 매력을 다 보여줄 수 없다.

화성 돌아보기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것이 수원시가 운영하는 '수원시티투어'와 '화성열차'다. 시티투어 버스는 수원역 4번 출구에 있는 수원관광안내소 앞에서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출발한다. 3시간 30분 동안 서장대(西將臺)·화서문·화홍문(華虹門)·화성행궁(華城行宮)·연무대(鍊武臺) 같은 화성의 주요 시설을 돌아보는데 어른 1만1000원, 초·중·고 학생 8000원, 미취학 아동 4000원이다. 화성열차는 화성행궁 뒤 팔달산 중턱과 연무대에서 출발한다. 오전 9시 50분부터 오후 7시 10분까지 각각 하루 12번, 30분씩 운행해서 시간의 제약을 덜 받고 요금도 어른 1500원으로 저렴하다.

팔달산과 연무대 두곳에서 탑승할 수 있는 화성열차. 용머리 뒤쪽으로 임금의 가마를 본떠 만들었다는 차량이 연결돼 있다.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
화성열차를 타기 전에 팔달구 남창동에 있는 화성행궁이나 길 건너편 매향동에 있는 화성박물관을 돌아보자. 행궁이란 보통 임금이 나들이 삼아, 혹은 능에 참배하러 갈 때 잠시 머무는 곳을 뜻한다. 자주 아버지 능을 찾던 정조대왕은 화성 성곽을 완공하던 1796년 팔달산 동쪽에 행궁도 지었다. 현재 행궁은 낙남헌 정도만 제외하곤 모두 새로 복원한 건물이라 사실 꼭 내부를 살펴볼 필요는 없지만, 행궁 터를 걸어보며 정조의 뜻을 되새기는 맛이 있다. 20세기 초 이곳에 서양식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이 있었다는 점도 알아둘 만한 상식이다.

팔달산 화성열차 타는 곳은 팔달산 정상 서장대와 화성행궁 사이에 있다. 행궁 주차장 끄트머리에 붙은 나무계단 깔린 길을 400m쯤 올라가면 매표소가 보인다. 옛 임금의 가마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화성열차는 유원지의 청룡열차처럼 생겨 조금은 조악해 보이는데, 막상 차에 올라 행궁 뒤편 팔달산 산책로를 달리면 기분이 상쾌하다. 열차 안 방송으로 나오는 설명도 들을 만하다.

팔달산을 내려온 열차는 서북각루(西北角樓) 앞을 돌아 화서문·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북포루(北鋪樓)·북서포루(北西砲樓)·북서적대(北西敵臺)를 지나 장안문으로 향한다. 공심돈·포루·적대·치(稚) 같은 성곽 각 부분의 기능을 알아두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성벽보다 높게 원통형으로 지은 공심돈은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이다. 내부를 소라처럼 나선형으로 만들어 '소라각'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멀리서 적을 감시하기 적절한 구조라고 한다. 장안문 앞쪽에 반쪽난 항아리 모양으로 붙어 있는 옹성(甕城)도 화성의 특징적 양식이다. 적대(敵臺)와 옹성은 성문으로 향하는 적을 옆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호된 왜란을 치렀던 경험이 성곽 축조에 영향을 끼쳐 독특한 군사 시설을 갖추는 데 이르렀다고 한다.

장안문을 지난 열차는 화홍문으로 가는데, 여기서부터 연무대까지가 가장 즐거운 구간이다. 좁은 길 옆에 다닥다닥 붙은 주택이나 가게와 성곽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날씨가 좋으면 쏟아지는 햇볕 아래 성곽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화성 성곽이 유난히 우아하다고 느낀다면, 아마 벽돌을 섞어서 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까지 우리 성곽엔 벽돌을 쓴 적이 없었다고 한다. 팔달산에서 출발한 열차 종점은 연무대다. 정식 이름은 동장대(東將臺)인데, 군사들을 훈련시키던 곳이라 연무대라고도 불렀다. 연무대 옆 성벽 밖엔 정조도 활쏘기를 즐겼다는 활터가 있어 요금을 조금 내면 활쏘기를 즐겨볼 수 있다.

방화수류정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용연지. 나무 그림자가 어른대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
화홍관창·용지대월 옛 정취 그대로

연무대에서 팔달산까지 다시 화성열차를 탈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연무대에서 내려 화홍문까지 걸어보길 권한다. 성곽을 따라 만든 산책로를 걸어보면 차를 타고 지나갈 때와는 사뭇 감상이 다르다. 연무대에서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다소 높아, 뒤편으로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중간에 동암문(東暗門)을 만나게 되는데, 암문이란 본래 적이 잘 볼 수 없는 곳에 만든 비밀통로란 점을 안다면 스파이 영화라도 찍는 듯한 스릴을 느끼며 그곳을 지날 수 있다.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은 화성 견학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답다. 화홍문 누각 아래엔 아치형 홍예문(虹霓門) 7개가 있는데, 수원천 물이 이곳을 지나며 하얗게 부서져 내린다. 화홍문 동쪽에 높이 솟은 방화수류정은 네모 반듯한 보통 정자 형태를 벗어나 개성 있으면서도 단아한 멋을 갖췄다. 요즘 같으면 틀림없이 무슨 건축대회나 디자인 어워드에서 큰 상을 탔을 것이다.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연못 속에 버드나무가 비치는데, '꽃을 찾고 버드나무를 따른다'는 정자 이름이 마음에 깊이 와닿는다. 정조대왕은 수원에서 특히 경치가 좋은 8곳을 꼽아 '수원팔경'이라 했는데 그중에 바로 '화홍관창'(華虹觀漲)과 '용지대월'(龍池待月)이 있었다. 맑은 계곡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화홍문을 지나는 광경을 즐기고, 방화수류정 아래 연못에 달이 떠오르길 기다리던 옛 풍류를 담은 말이다.

연무대에서 팔달산으로 향하는 화성열차를 타거나, 또는 팔달산에서 열차에 오르기 전 여유가 있다면 서장대에 올라보길 권한다.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는 화성 전역을 내려다 보며 군사 작전을 총괄하던 곳이라 전망이 훤히 트여 있다. 서장대 옆엔 사방을 감시하다가 적이 다가오면 쇠뇌를 쏠 수 있게 만든 서노대(西弩臺)도 있다. 수원시가 펴낸 책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1만5000원)을 사들고 오른다면, 성곽 각 부분의 기능과 특징이 궁금할 때 간략한 설명이나마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