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장관상 '자활명장賞' 받는 푸른환경대구 대표 김경화씨
특수학교 청소하고 받은 첫 월급 57만원, 그 돈이 고마워 내 일처럼 일했다
하루 4시간 자면서 7남매 모두 대학까지…
오는 11일 청소용역업체인 '푸른환경대구' 대표 김경화(60)씨가 서울에 간다. 월드컵 평화의광장에서 열리는 '자활나눔축제'에 보건복지부장관상인 '자활명장상'(自活名匠賞·정부 자활사업에 참여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이에게 주는 상)을 받기 위해서다. 수상 소식을 들은 것은 8월 말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 서울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남편과 사별 후 일곱 아이와 망연자실해 있던 것이 15년 전이다. 당시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푸른환경대구' 대표를 맡아 직원 80명 연 매출 6억7000만원 크기로 키워놓았다. 그 15년의 이야기가 서울까지 닿은 것이다.
- ▲ 일곱 아이가 서로 끼니와 숙제를 챙기고 잠들면 김경화씨가 들어와 지친 몸을 뉘었다. 하루 4시간 자면서 10년 넘게 버텼다. 그러는 동안 여섯 딸은 대학을 마치고 넷이 결혼했고, 막내아들은 대학생이다. '첩첩산중 촌에서 학교도 댕길동말동했던' 김씨는 대구에서 가장 큰 학교청소 전문업체 대표가 됐다. /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마, 얼떨떨하데예. 내는 고마 일만 열심히 한 거밖에 없는데…. 딸이 '내는 엄마처럼 못살지 싶다'면서 축하 전화를 해주니 실감나데예. 최선을 다하면 끝이 좋다고, 그렇게 믿고 살았심더."
남편이 고혈압으로 세상을 뜬 후, 40대 중반이던 김씨가 간 곳이 대구남구지역자활센터였다. (재)중앙자활센터의 지원을 받아 저소득층에게 직업교육을 시키고 일자리도 소개하는 곳이다. 식당 일과 남의 집 일을 닥치는 대로 하던 그는 '여기가 마지막'이라며 단단히 마음 먹고 찾아갔다. 특수학교 청소가 첫 일이었다. 월 57만원이 들어왔다. 그게 고마워 내 일처럼 나섰고, 1년 계약이 다섯 번 갱신됐다.
"거기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 아입니까. 아아들이 장애가 있으면서도 정을 나눌 줄 알고 밝데예.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고. 그만둘 때 아아들 붙잡고 많이 울었지예."
자활센터에서 출범한 학교청소 용역전문 '푸른환경대구' 대표를 맡은 것은 5년 전이다. '일 잘한다'고 인정받은 데다, 그가 자활센터에 가장 오래 몸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몇 년 일하다가 그만 둔다고 한다. 숨어 있던 그의 '경영 능력'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대표를 맡기 전, '푸른환경대구'는 12개 학교와 계약맺고 있었다.
"이래 갖고 살아남을까 싶었심더. '최선을 다해 보자' 싶어 사무실 얄궂은 거 하나 얻고 기계도 400만원어치나 샀지예. 6개월간 도시락 싸들고 학교에 홍보하러 다녔심더. 안된다고 하면 열 번 스무 번찾아가 화장실청소를 무료로 해줬지예. 그 해에만 학교 10개를 땄어예. 그 후론 해마다 10개씩 계약이 들어오데예."
하지만 '대표'라는 직함은 이름뿐이었다. 매일 오전 9시~오후 5시 학교로 가서 직원들과 청소했다. 귀가해 저녁 먹고 누워도 '어떻게 해야 회사를 키울까' 하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일해 받는 돈은 월 100만원이다. 그나마 반 년 전까지는 80만원이었다.
"돈 때문이면 이렇게 못합니더. 직원들 처지가 뻔한데 우찌 혼자 편하자고 돈 더 받고 몸을 놀립니꺼."
위기도 있었다. 작년 위암 초기 진단을 받고 위를 절제했다. 치료 때문에 공교롭게 계약 갱신기인 올 2월 자리를 비웠는데, 계약이 후두둑 떨어져 나가더란다.
"우짭니꺼. 몸이 띵띵 불어가 돌아다녔지예. 그거 겪고 나니까 '인생살이 별게 아니다' 싶고, 많진 않지만 내가 받은 거 다 돌려주자 생각이 들었어예."
다시 건강해진 그는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우리 회사가 해마다 100만~200만원씩 불교복지회에 기부합니더. 이제 다시 찬바람 불고 겨울 올 텐데…. 우리가 더 넉넉해져가 노인들 손 시려븐데 장갑 하나라도 나눠드려야 안 되겠심니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