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화(螢火) - 함형수 (1914 ~ 46)
논두렁에 잠방이를 적시고 개울물에 발을 적시고 어두운 잔디밭을 조오그만 가닥손을 치어든 채 소년은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달렸다. 파아란 반딧불, 그것은 움직이는 또다른 별이었다.
짧은 생애 동안 시집 한 권 없이 간 사람, 그러나 그가 쓴 시 몇 편이 문학이라는 책갈피에 오래오래 남은 사람, 그가 함형수이다. 그의 대표적인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의 마지막 행,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도 그렇지만 그가 오래오래 남는 이유 중 하나는 그에게는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의 꿈, 또는 이 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별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달리는 소년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의 시를 읽으면 그런 별의 말소리가 들린다. 반딧불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소리치는 별의 메시지, 메시지가 손에 잡혀 움직이는 시, 영원히 좋은 시다.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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