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 -구광본(1965~ )
늦은 밤에 모여 앉았습니다
수박이 하나 놓여 있고요
어둠 속에서 뒤척이는 잎사귀,
잠못드는 우리 영혼입니다
발갛게 익은 속살을 베어물 때마다
흰 이빨이 무거워지는 여름 밤
얼마나 세월이 더 흘러야 할까요
넓고 둥근 잎사귀들이 퍼져나가
다시 뿌리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까지는요
오랜 헤어짐을 위하여
둥글게 모여 앉은 이 자들이
아버지, 바로 당신의 식구들입니다
한여름밤의 풍경 하나가 보인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젯밤 연출한 풍경인지도 모른다. 수박 한 덩이를 평상 가운데 놓고 둘러앉은 식구들…. 그 식구들을 반드시 지상에 사는 모든 이들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으리라. 아무튼 지구는 지금 늦은 밤, 거기 평상 하나 펼치고 사는 존재들은 ‘어둠 속에서 뒤척이는 잎사귀’들이며 ‘잠못드는 영혼’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시인은 ‘넓고 둥근 잎사귀들이 퍼져나가’는 꿈을 꾼다. 그리고 ‘오랜 헤어짐을 위하여 둥글게 모여 앉은’ 지상의 모든 이의 수박같이 둥근 등들을 본다. ‘아버지’, 하고 부른다. 왜? 아버지는 뿌리이기 때문에. 상처의 존재이기 때문에. 가장 굳건한, 가장 기인. <강은교·시인>
'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가 있는 아침] 한 손 [중앙일보] 기사 (0) | 2010.09.07 |
---|---|
형화(螢火) - 함형수 (1914 ~ 46)형화(螢火) - 함형수 (1914 ~ 46) (0) | 2010.09.07 |
북어국 끓는 아침 - 이영식 (1956 ~ ) (0) | 2010.09.07 |
어찌할 수 없는 소문 - 심보선 (1970 ~ ) (0) | 2010.09.04 |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 이육사 (1904 ~ 1944) (0) | 2010.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