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청동거울의 뒷면 - 조용미 (1962 ~ )청동거울의 뒷면 - 조용미 (1962 ~ )

푸른물 2010. 7. 17. 04:42

청동거울의 뒷면 - 조용미 (1962 ~ )

내가 보는 것은 늘 청동거울의 뒷면이다

청동거울을 들여다보기까지

짧은 순간의 그 두려움을 견뎌야만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볼 수 있다

구름문, 당초문, 연화문……

시간의 두께에 덮인 녹, 그 뒷면에

정말 무엇을 비추어볼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청동거울 안의 나를 보고 싶다

업경대를 들여다보듯 천천히 동경(銅鏡)을 들어

두 마리 물고기가 마주 보고 있는

쌍어문경(雙魚紋鏡)을 얼굴 앞으로 끌어당겨야 하리

(중략)

쓰윽 손으로 한 번 문지르기만 하면

몇백 년의 시간이 다 지워지고

거기 푸른 녹이 가득 덮인 거울 위에

거울을 들여다보던 오래전 사람의 얼굴이 나타날 것이다

(하략)



뒷면이 중요하다. 앞면이 아니라, 사물의 뒷모습들, 혹은 내밀한 모습들이 들어있기 마련인 뒷면, 시의 상상력은 바로 그 뒷면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뒷면의 상처들이 우리를 만든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남는 것은 무엇일까. 깨진 거울의 뒷면이 아닐까. 거기 바람은 하나의 무늬가 되어 지나가리라. 거기서 달려오는 과거를 만나라. 뒷면이 없으려는 앞면들이 오늘의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모든 뒷면이 앞면을 완성함을 잊은 듯이.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