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 - 송찬호(1959~ )
여자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여자는 말똥을 담는 소쿠리처럼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울을 보지 않고 지낸 얼마 사이 초승달눈썹 도둑이 다녀간 게 틀림없었다
거울 속 상심으로 더욱 희고 수척해
진 비련의 여인에게 구애의 담쟁이덩굴이 뻗어가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콤팩트를 열고 그중 가장 눈부신 나비 색조를 꺼내 자신의 콧등에 얹어놓았다
여자의 화장 손놀림이 빨라졌다 이제 여자의 코를 높이는 끝없는 나비의 노역이 다시 시작되었다
실연의 경험은 거울조차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여인을 자포자기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자학의 순간이 지나가면 어느새 여인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고친다. 시간이 상처를 아물게 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본능이 어제를 잊게 한 까닭이다. 여인에겐 실연의 심연보다 더 절실하게 건너가 닿고 싶은 화장대 앞의 피안(彼岸)이 있다. 동화적인 유비로 정돈된 상상력이 시를 새록새록 되살린다. <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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