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보건소 강당에 8명 참석
손자·손녀를 직접 돌보기 위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육아교실에서 인형을 안고 아기 어르는 법을 배우고 있다. [김태성 기자] | |
강당 맨 앞에 선 강사의 질문에, 할아버지들이 볼펜을 손에 들고 위아래로 흔든다. 칵테일 섞듯 볼펜을 마구잡이로 흔드는 어르신도 있다.
“어르신들, 아니에요. 위아래로 마구 흔드시면 기포가 생겨서 아이가 먹다가 토하게 되니 원을 그리듯 부드럽게 돌려주셔야 해요. 자 따라 해 보세요.” 김순화 강사의 손짓을 따라 하는 어르신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16일 오전 10시 서울 구로보건소 9층 강당에서 진행된 ‘예비 할아버지·할머니 교실’ 모습이다. 이날 무료로 마련된 육아교실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모두 40여 명. 이 중 할아버지도 8명 참석했는데 서울에선 처음이다. 구로보건소는 아이 돌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예비 할머니 교실’을 올해 서울시내 25개 구청 중 최초로 ‘예비 할아버지·할머니 교실’로 확대했다. 지난해 처음 육아교실을 만든 뒤 “할아버지 교실도 만들어달라”는 할머니들의 요청이 빗발쳐서다. 혼자서는 손자·손녀 육아가 너무 힘이 든다는 게 할머니들의 말이다.
이날 강의 주제는 ‘최신 육아정보’였다. 세대 간의 육아 상식이 달라 갈등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했다. ▶땀띠를 낫게 한다고 베이비 파우더 바르지 말고 기저귀 발진 전용 크림 발라줄 것 ▶분유를 탈 때 보리차 말고 팔팔 끓여 섭씨 60도 이하로 식힌 물을 쓸 것 ▶몸에 좋다고 분유를 많이 넣지 말 것 ▶젖병을 끓는 물에 오랫동안 삶지 말 것 등 예전과 다른 육아정보에 어르신들이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들의 메모하는 손길도 분주했다.
강의 중간마다 질문이 쏟아졌다. 아기가 왜 밤에 깨서 우는지, 목욕은 일주일에 몇 번 시켜야 하는지, 트림은 어떻게 시키는지에 강사가 일일이 답하느라 2시간이 훌쩍 갔다. 육아교실의 김순화 강사는 “직장인의 70.9%가 부모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노동부의 통계가 있다. 실제로 요즘 문화센터에 육아 강의를 나가면 할아버지·할머니가 대부분이다. 초보 엄마나 마찬가지인 어르신을 위해 실습과 이론을 병행한 강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인과 함께 육아교실을 찾은 하태원(60·오류1동)씨는 요즘 큰딸이 낳은 3개월 된 손녀 돌보느라 바쁘다. 맞벌이를 하는 딸을 위해 손녀를 맡았지만 육아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손녀를 처음 집에서 목욕시킬 때 집은 아수라장이 됐다. 발부터 물에 담가야 하는지, 비누로 씻겨도 되는 건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하씨는 “아내도 애 키운 지 오래돼 다 잊어버렸고 나는 경험이 없어 정말 난감했다”며 “아내가 가자고 해서 육아교실에 왔는데 정말 유용한 상식을 많이 배웠다”며 웃었다. 예비 할아버지 이용석(58·오류2동)씨는 5월에 태어날 손자를 위해 이날 강의를 들었다. 이씨는 “아들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우리가 손자를 맡기로 했으나 나이 든 아내 혼자 힘들 것 같아 옆에서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일수 지역보건과 팀장은 “할머니 혼자 아기를 돌보기는 힘에 부치다 보니 할아버지도 육아에 뛰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구청은 지난해 두 번 열었던 교실을 올해부터 분기별로 진행할 계획이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