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난은 - 천상병(1930~1992)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잔돈 몇 푼이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잎으로 때론 와…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지상에서 가장 무능한 삶을 살았던, 그리하여 순백한 영혼의 소유자를 수장으로 받드는 나라가 있다면, 천상병 시인은 마땅히 그 수장 중의 한 분일 것이다. 한평생 무엇도 주장하지 않고 주어진 가난을 다만 그대로 살다 간 무능을 우리는 비웃어야 할까. 가난이 삶의 보람일 수는 없지만 주어지는 가난은 피할 수도 없는 것. ‘잔돈 몇 푼’에 과부족의 기쁨을 느끼는 이 무능한 자족은 삶이 소유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한 시인의 티 없음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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