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제 몸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기도 했어요” [중앙일보] 기사

푸른물 2009. 7. 13. 17:32

제 몸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기도 했어요” [중앙일보]

농약 중독 치료법 연구 26년째 순천향대 의대 홍세용 교수

충남 천안시 봉영동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별관 4층에 있는 홍세용(61·사진) 교수의 연구실. 그곳에는 다른 연구실에서 볼 수 없는 플라스틱병들이 늘려 있다. 농약병이다. 몇 모금만 마셔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맹독성 농약이 상당수다. 신장내과 전문의인 그는 25년 동안 농약에 빠져 살았다.

내과전문의가 농약을 만난 것은 1984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순천향대 천안병원 교수로 근무할 때였다. 당시 병원을 찾은 환자의 상당수가 농부였다. 농약을 마시고 응급실로 실려온 환자들을 진료했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위 세척과 포도당 주사를 놓아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홍 교수는 “정신이 멀쩡한 환자들과 곁을 지키던 가족들에게 ‘며칠 있으면 사망할 겁니다’라는 말을 건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환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손 놓고 볼 수가 없어 농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목표는 치료법 개발. 하지만, 당시 농약 중독을 다루는 의학서적이나 논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우선 국내에서 시판되는 농약의 성분과 위험성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몸속에 들어온 농약 성분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치료법을 연구했다. 91년 천안병원에 농약중독연구소를 국내 최초로 만들었다. 98년에는 국내에서 시판되는 300여 종 농약의 독성과 치료법을 담은 농약중독치료지침서를 펴냈다.

2007년에는 자신의 몸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았다. 농약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독성도 어느 정도 있는 물질을 직접 먹어 본 것이다. 치사량 이하였지만 어지러움을 느껴 실험을 중단됐다. 그는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환자들에게 바로 사용할 수 없으니까 내가 먼저 먹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농약 중독으로 이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는 약 400명. 외래진료를 포함해 한 해 1000여 명이 홍 교수의 손을 거친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도 많지만 사망하는 환자도 더러 있다. 홍 교수는 “올 초에 여중생 2명이 농약을 마시고 입원을 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선생님 저는 죽는 건가요’라고 묻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며 “그런 기억들이 농약 연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홍교수의 홈페이지(http://honglab.com)에는 한 달에 100여 건의 농약 중독 관련 상담이 올라오는데 일일이 답글을 올린다. 홍 교수는 “농약이라는 바통을 들고 의료현장에서 뛰었다”며 “빨리 뛰었다는 소리보다 열심히 뛰었다는 말을 듣고 후배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글=강기헌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