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뇌자도(腦磁圖) 개발한 표준과학연구원 이용호 박사
머리 속에서 나오는 자기장 변화 1초에 1000장 촬영
센서·회로설계 등 주요 부품 국산화 … 대만에 수출도
마음의 변화는 뇌 활동의 변화를 가져 온다. 그러나 뇌파 측정기나 핵자기공명영상촬영(MRI)으로는 그 변화를 정확하게 읽을 동영상을 촬영할 수 없다. 뇌파의 경우 두개골 밖으로 나오면서 일그러져 실제 뇌파 발생 위치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뇌자도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이용호 박사. 뇌자기 신호를 포착하는 센서가 붙어 있는 헬멧형 뇌자도(오른쪽 위). 뇌 신호가 뇌 속에서 퍼져나가는 순간을 0.001초마다 포착한 영상(오른쪽 아래). [김태성 기자] |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뇌인지융합기술연구단의 이용호(47) 박사는 뇌의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뇌자도(腦磁圖) 개발에 20년 가까이 열정을 바쳐 왔다. 그가 개발한 고성능 뇌자도가 국내 처음으로 서울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곧 설치된다. 간질과 뇌 인지 등의 연구용이다. 뇌자도는 뇌 신경세포끼리 전기신호를 주고받을 때 나타나는 자기신호 파형을 감지해 내는 기기다. 뇌 속의 자기장 변화를 1초에 1000장씩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 뇌 안의 움직임을 동영상처럼 볼 수 있다. 그를 최근 만나 봤다.
- 의학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간질 발생 부위와 그 주변의 뇌 기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간질의 발생 부위는 특별히 정해진 곳이 없다. 그래서 기존 뇌파 측정기나 MRI로는 찾아내기 어렵다. MRI 영상으로 보이는 뇌 손상 지점이 곧 간질을 일으키는 전기 스파이크가 발생하는 지점(간질 초점)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발병 지점을 잘 잡아내야 수술 결과가 좋고, 뇌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정밀진단을 하기에는 기존 기기가 역부족인 면이 많다.”
-기존 뇌 영상 장치보다 나은 점은.
“뇌자도의 장점은 인체 내에 약물을 투입하거나 강한 자기장을 쪼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센서가 부착된 헬멧으로 머리 속에서 나오는 미약한 자기신호만 감지할 뿐이다. 암 조기진단에 요긴한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주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여러 번 검사를 해야 할 경우 몇 달 간격을 둔다. 인체에 해로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능성 핵자기공명영상촬영(fMRI)으로도 뇌의 움직임을 볼 수 있지 않나.
“뇌자도는 0.001초 간격으로 뇌를 촬영할 수 있다. 이는 뇌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다. 반면 혈류를 측정해 뇌의 변화를 알아내는 ‘기능성 MRI’는 1.5초, PET는 수십 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해외에 수출도 했다는데 .
“그렇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곧 설치될 뇌자도는 뇌 자기 신호를 감지해 내는 152개의 센서가 장착된 최신 헬멧형이다. 지난해 1월에는 국립 대만대학병원에 128개의 센서를 내장한 뇌자도를 수출하기도 했다. 외국산보다 센서 감도는 10배 이상 좋아졌다. ”
-외국산 비해 제품경쟁력이 있는가.
“핵심 부품인 자기장 센서에서부터 회로설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국산화했다. 외국산은 부품 단위로 각 업체에서 사와 조립하기 때문에 가격이나 기술경쟁력 면에서 국산을 쫓아오기 어렵다.”
-활용 분야는.
“간질뿐 아니라 뇌종양 등을 수술할 때 발병 부위 주변의 뇌 기능까지 뇌자도로 알아낼 수 있다. 청각 담당 뇌 부위에 뇌종양이 있다고 치자. 어떤 소리를 들려준 뒤 뇌종양 바로 옆이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곳이라면 그 부위 절제를 최소화한다. 실어증 같은 언어장애의 원인을 규명하거나 치매 등 뇌기능 손상을 조기 진단해 줄 수도 있다.”
-앞으로 계획은.
“MRI만 갖고는 자칫 놓치기 쉬운 전립선암·유방암 등을 진단하는 ‘저자장 MRI’와 ‘저자장 MRI에 뇌자도를 결합한 인체 영상 장비’를 개발 중이다. 저자장 MRI는 태아나 임신부에게 해가 없다. ”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이용호 박사=KAIST 물리학 이학박사. ▶스퀴드 센서 개발 ▶150 채널 뇌자도 개발 ▶64채널 심자도 개발 ▶국제 학술논문 70여 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우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