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수학생 한명이라도 더… 고교 홍보전(戰) '대학 뺨치네'이인묵 기자 reds

푸른물 2009. 6. 5. 08:00

우수학생 한명이라도 더… 고교 홍보전(戰) '대학 뺨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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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6.03 03:15

고교(高校)선택제 시행 앞두고…
성적 3%내에 들면 장학금 새교복 제작,
신입생 끌기 홍보 전담팀 별도로 운영
대입(大入) 설명회 수시로 열어

서울 오금동 보인고등학교는 내년 3월 입학하는 신입생 중 중학교 3년 평균 성적이 상위 3% 이내인 '성적 우수 신입생' 전원에게 500만원씩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이 학교는 신입생 중 최대 400명(신입생 정원 450명)이 '성적 우수 신입생'일 것으로 기대하고, 장학금 줄 돈 20억원을 올봄에 일찌감치 마련해뒀다. 이 학교 100년 역사상 단일 기수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주는 장학금으론 최대 액수다.

보인고가 이렇게 '강수'를 둔 것은 '고교 선택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신현동(60) 보인고 교장은 "우리 학교는 실업계에서 일반계로 전환한 지 3년밖에 안 돼 뛰어난 학생들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파격적인 장학금을 내걸어서 인재를 모으려 한다"고 했다. 신 교장은 "고교 선택제가 도입되면 기존 입시 명문에만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고 나머지 학교는 피해를 볼 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우리 학교가 단숨에 도약할 '기회'라고 본다"고 했다.

내년 3월 고교 신입생부터 서울 전역에서 고교 선택제가 실시되면서, 일선 학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고교 선택제는 학생들이 각자 가고 싶은 학교를 서울 전역에서 2곳, 자기 학군에서 2곳 고르게 한 다음, 교육청이 추첨을 통해 그 중 한 곳에 배정하는 제도다. 일선 학교들은 우수한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휘경동 휘경여자고등학교는 올해 신입생부터 교복을 바꿨다. 여중생들 사이에서 "교복이 예쁜 학교"라는 호평을 얻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새 교복은 상·하의를 모두 검은 톤으로 맞추고, 소매·칼라·치맛단 끝에 까만 벨벳을 덧댔다. 해외 명품 브랜드 '샤넬'과 흡사한 분위기다. 휘경여고 관계자는 "2~3학년 학생들이 '우리도 새 교복을 입게 해달라'고 졸라댈 정도로 새 교복의 인기가 높다"며 "내년 신입생 모집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했다.

압구정동 구정고등학교는 오는 9월부터 학교 이름을 '압구정고등학교'로 바꾸기로 했다. 이 학교 정정옥(여·55) 교감은 "고교 선택제 도입이 거론되던 지난해부터 교명 변경을 준비해왔다"며 "'구정'이란 이름만으로는 8학군 한복판에 있다는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나지 않아서, '압구정'을 명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홍보 강화'에 나선 학교도 많다. 신목6동 신목고등학교는 한 학기에 한 번 하던 학부모 대상 대입 설명회를 올해부터 분기마다 한 번씩 1년에 4차례로 늘렸다. 정기 설명회 말고도, 앞으로 대학교육협의회나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입시 정책과 관련해 중요한 발표를 하면 그때마다 1주일 뒤에 학부모들을 불러 소상하게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봉천동 영락고등학교는 올 들어 교사 3명으로 구성된 '교육 홍보부'를 신설했다. 또 올해부터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 대상으로 학교생활 만족도 평가를 하고, 그때마다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평준화 전부터 입시 명문으로 이름 높았던 학교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편이다. 삼성동 경기고등학교와 청운동 경복고등학교는 "학교 홍보자료와 소식지를 만드는 것 외에 별다른 홍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서초동 서울고등학교 길산석(50) 교감은 "우리 학교는 역사·동문·장학금·진학 성적 등 여러 조건이 이미 갖춰져 있기 때문에 고교 선택제가 도입된다고 안달할 일은 없다"며 "동문들의 자발적인 지원이 늘면서 장학금 규모는 좀 확대했다"고 했다. 매년 학년별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 10명을 뽑아 100만원씩 주던 서울고는 올해부터 장학금 지급 대상을 20명으로 늘렸다.

고교 선택제 도입을 앞두고 가장 긴장하는 곳은 명문고 근처에 있는 공립학교들이다. 같은 학군 학교들끼리도 경쟁해야 하는 까닭이다.

개포동 개포고등학교 관계자는 "주변에 경기고·경기여고·휘문고 등 사립 명문이 많아 신경이 쓰이지만 공립학교인 우리가 똑같이 따라 할 순 없지 않으냐"며 "돈 들여서 홍보하는 대신 들어오는 학생들을 최대한 잘 가르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일선 학교의 분주한 움직임에 대해 "기대한 대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기성(54) 중등교육정책과 장학관은 "각 학교가 학생들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 최미숙(50) 대표는 "일선 학교가 학생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교복·시설·장학금 같은 겉모습보다 교육 내용을 보다 내실 있게 다졌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