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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먹는데 혈압이 왜 안 떨어지지?

푸른물 2008. 11. 13. 08:28

약 먹는데 혈압이 왜 안 떨어지지?

'저항성 고혈압' 환자 증가
당뇨병·비만 인구 증가 등이 주원인
혈압약 3가지 이상 써도 조절 안 돼
"짠 음식 멀리하고 체중부터 줄여야"

우리나라 30대 이상 성인의 27.9%가 고혈압이다.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다. 성인 4명 중 1명이 고혈압이라는 뜻이다. 고혈압은 아니지만 정상 혈압(120/80mmHg)과 고혈압(140/90mmHg) 사이에 드는 '고혈압 전 단계'까지 포함하면 혈압이 높은 사람은 성인의 50~6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고혈압 인구가 늘면서 혈압약을 복용해도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환자들이 늘고 있다. 이를 '저항성 고혈압'이라고 한다. 이는 3가지 종류의 다른 혈압약을 써도 목표한 만큼 혈압이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혈압이 목표한 만큼 내려가더라도 혈압약을 4종 이상 사용할 때도 저항성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지난 9월 미국 앨라배마대 심장내과 데이비드 칼혼 교수는 미국심장협회(AHA)에서 발간하는 의학전문지 '순환'에서 '미국의 저항성 고혈압 환자는 20~3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앞으로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분당서울대병원 심장내과 김철호 교수팀도 고혈압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1만3184명을 분석한 결과 당뇨병이나 만성신질환이 있는 사람의 10.5%, 이런 질병이 없는 사람은 9.7%가 3가지 이상의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은 혈압약을 써도 듣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환자가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당뇨병 환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김철호 교수팀의 연구에서도 일반 고혈압 환자는 전체의 51%가 목표한 수준으로 혈압이 조절되고 있었지만, 당뇨병을 함께 가진 고혈압 환자는 이의 절반도 안 되는 21.6%만이 목표한 수준으로 혈압이 조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 환자에게 당뇨병이 생기면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져 혈관을 수축시키는 교감신경계가 항진돼 혈압약을 써도 약이 잘 듣지 않는다.

인구 고령화와 비만 인구 급증도 저항성 고혈압 환자 증가의 원인이다. 나이가 많아지면 혈관의 탄력도가 떨어지고, 비만하면 혈압을 높이는 신경계가 활성화되므로 약을 써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다. 그밖에 과도한 염분섭취, 신동맥 협착과 같은 만성 신장질환도 저항성고혈압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원발성 알도스테론증' 환자가 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는 체내 수분, 전해질 농도와 상관없이 수분을 과다하게 흡수하는 질환으로이 병에 걸리면 저항성 고혈압이 되기 쉽다. 김철호 교수는 "몇 십 년 전에는 원발성 알도스테론증은 전체 저항성 고혈압 환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5%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2%나 된다. 이 약은 미네랄 코르티코이드 수용체 길항제라는 특정 약을 써야만 혈압이 조절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혈압 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은 혈관 손상이 많이 진행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은 뇌졸중이나 심장마비와 같은 심혈관 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일반 고혈압 환자들보다 훨씬 높다"고 말했다.

저항성 고혈압으로 진단되면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 체중조절이나 저염식을 통해 상당한 정도로 혈압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고혈압학회는 2005년 체질량 지수가 30이상인 비만한 고혈압 환자는 정상 체중인 고혈압 환자보다 혈압 목표치 도달률이 30%가량 낮다고 보고한 바 있다.

고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임도선 교수는 "체중을 10㎏ 줄이면 수축기 혈압(혈압을 읽을 때 먼저 읽는 수치)은 6mmHg, 이완기 혈압(혈압을 읽을 때 나중에 읽는 수치)은 4.6mmHg가 줄어든다. 따라서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저항성고혈압 환자는 체중부터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짠 음식도 멀리해야 한다. 미국고혈압학회는 저염식을 하면 수축기 혈압은 5~10mmHg, 이완기 혈압은 2~6mmHg 가량 떨어지므로 저항성고혈압 환자는 하루 소금섭취량을 5.7g 미만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는 라면 한 개에 들어 있는 소금의 양과 같다.

저항성고혈압의 치료 약물은 이뇨제가 고려된다. 미국고혈압학회는 저항성 고혈압의 원인이 이뇨제를 충분히 사용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으므로 이뇨제 처방을 늘릴 것을 의사들에게 권고했다.

김철호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도 당뇨병이나 신장에 문제가 있는 고위험군은 이뇨제를 더 많이 써야 하는데 오히려 이뇨제를 쓰는 경우가 적었다. 우리나라는 고혈압 환자에서의 이뇨제 사용률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낮다. 이는 이뇨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다른 약이 없어 장시간 지속형 이뇨제(티아지드계)를 한 번에 75㎎씩 투여해 신장이 손상되는 등 부작용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써봐야 12.5㎎이다. 이 용량으로는 신장 손상이 생기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임도선 교수는 "사회가 점차 고령화되고 비만인구가 늘어나면서 약으로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홍유미 헬스조선 기자 hym@chosun.com
  • 2008.11.11 22:16 입력 / 2008.11.12 09:53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