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

단풍, 너를 보니 / 법정

푸른물 2024. 2. 11. 15:18

단풍 , 너를 보니 / 법정

 

늙기가 얼마나 싫었으면 

가슴을 태우다 태우다

이렇게도 붉게 멍이 들었는가

 

한창 푸르를 때는

늘 시퍼럴 줄

알았는데

 

가을바람 소슬하니

하는 수 없이

너도 옷을 갈아 입는구나

 

푸른 옷 속 가슴에는

아직 푸른 마음이 

 미련으로

머물고 있겠지

 

나도 너처럼

늘 청춘일 줄 알았는데 

 

나도 몰래

나를 데려간 세월이

야속하다 여겨지네

 

세월따라 가다보니

육신은 사위어 갔어도

 

아직도 내 가슴은

이팔청춘 붉은 단심인데

 

몸과 맘이 따로 노니

주책이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너나 나나 

잘 익은 지금이

제일 멋지지 아니한가

 

이왕 울긋불긋 색동옷을

갈아 입었으니

온 산을 무대삼아

실컷 춤이라도  추려무나

 

신나게 추다보면

흰 바위 푸른 솔도

손뼉치며 끼어 들겠지

 

기왕에  벌린 춤

미련없이 너를 불사르고

온 천지를 붉게 활활

불태워라

 

삭풍이 부는

겨울이 오기 전에...

 

법정:  승려  수필가

본명 박재철

1932.  10 . 8 전남 해남군

2010.  3.  11 향년 77세

*무소유의 저자로 유명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법정스님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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