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 너를 보니 / 법정
늙기가 얼마나 싫었으면
가슴을 태우다 태우다
이렇게도 붉게 멍이 들었는가
한창 푸르를 때는
늘 시퍼럴 줄
알았는데
가을바람 소슬하니
하는 수 없이
너도 옷을 갈아 입는구나
푸른 옷 속 가슴에는
아직 푸른 마음이
미련으로
머물고 있겠지
나도 너처럼
늘 청춘일 줄 알았는데
나도 몰래
나를 데려간 세월이
야속하다 여겨지네
세월따라 가다보니
육신은 사위어 갔어도
아직도 내 가슴은
이팔청춘 붉은 단심인데
몸과 맘이 따로 노니
주책이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너나 나나
잘 익은 지금이
제일 멋지지 아니한가
이왕 울긋불긋 색동옷을
갈아 입었으니
온 산을 무대삼아
실컷 춤이라도 추려무나
신나게 추다보면
흰 바위 푸른 솔도
손뼉치며 끼어 들겠지
기왕에 벌린 춤
미련없이 너를 불사르고
온 천지를 붉게 활활
불태워라
삭풍이 부는
겨울이 오기 전에...
법정: 승려 수필가
본명 박재철
1932. 10 . 8 전남 해남군
2010. 3. 11 향년 77세
*무소유의 저자로 유명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법정스님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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