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가을 오후 / 도종환

푸른물 2014. 11. 4. 07:00

가을 오후 - 도종환(1954~ )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 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작곡가들이 자기의 자장가를 남기듯이, 시인들은 가을시를 많이 쓴다. 여름의 풍성한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수확의 계절 가을은 더위에 지친 심신을 위로해 준다. 벌써 겨울을 맞이할 준비로 바쁘기도 하다.

 가장 먼저 계절을 맞이하는 나무들은 어느새 이파리를 떨구고, 매미의 노랫소리가 잦아들면서 철새들도 떠날 채비를 한다. 사방에서 모여들어 여름 축제를 벌이던 마당이 한적해지고, 하나 둘씩 떠나보내는 마음이 쓸쓸해진다. 뒤에 남아서 손님들이 떠난 집안을 치우고 홀로 산책길을 걷다 보면 화려했던 지난날을 바라보던 시선이 차츰 내면으로 가라앉는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

'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뒷굽 / 허형만  (0) 2014.11.04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김승희  (0) 2014.11.04
속수 무책 / 김경후  (0) 2014.11.04
자울 수 없는 얼굴 / 고정희  (0) 2014.11.04
묵화 / 김종삼  (0) 201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