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노인 자살률이 높기 때문이다. 존경받았던 과거 역할이 사라지고,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노인들은 복지 시스템과 자식들에게 기대고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우울증 끝에 그들은 자살을 택한다. 지난 7일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한 할머니가 노인용 유모차에 의지해 걸어가고 있다. /이덕훈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아파트에 사는 이점순(가명·81) 할머니. '자살 위험군'이다. 수시로 자살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집 안에 치사량 수면제를 모아뒀다. 남양주 노인자살예방센터 상담사들이 매주 찾아가 말동무도 해주고 어깨도 안아드린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가면 또 할머니 혼자가 된다. "지금이라도 고마, 숨이 탁 막히가 죽어뿌렸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어렸을 때 호강하며 자랐다. 삼천포 객줏집 딸로, 유치원도 다녔다. 시집온 뒤 가세가 기울어 온갖 고생 다했다. 그래도 2남 1녀가 "우리 어무이 최고!" 하면, 고초가 사르르 녹았다. 두 아들이 축구 하다 다치면 밀가루·식초·치자를 싹싹 개서 발라줬다. 그 아들이 손녀를 낳자 빈 젖 물려가며 키웠다. 자식·손녀 머릿속에선 아스라이 사라진 그런 순간을, 할머니는 남양주 아파트에 홀로 누워 수백 번 곱씹었다. 그래서 그들이 더 괘씸했다.
할머니가 이곳에 이사 온 건 지난여름 '밥상 사건' 이후다. 20년 전 남편이 떠난 뒤 두 아들 집을 오가며 지냈는데, 그중 차남 집에 머물 때 일이 터졌다. 둘째 며느리가 할머니와 언쟁하다 욱해서 밥상을 내던졌다. 격분한 할머니가 경비 아저씨를 데리고 올라왔다. "근데 며느리가 그새 집 안을 싹 치우고 '우리 시어머니가 치매가 있어 헛소리한다'고 거짓말을 하더라꼬." 아들은 아내를 혼내는 대신 "이러다 누구 하나 죽을 것 같다"고 물러섰다. 열여덟 살 손녀는 할머니를 밀쳤다.
그 일을 계기로 할머니는 30년 가까이 산 서울을 떠나, 딸네 집과 가까운 남양주에 아파트를 얻었다. 혼자 있자니 울화가 솟고 혈당이 떨어졌다. 수시로 저혈당 쇼크가 왔다. 죽고 싶어 밤새 혼자서 자기 목을 눌렀다. 수면제 한 통을 삼키려 한 적도 있다.
급기야 숨이 콱 막혔다. 가만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노인용 유모차를 밀고 무작정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있는 데를 찾아나섰다. 우연히 마주친 요양 도우미에게 울면서 매달렸다. "내 좀 살려주이소. 내 곧 죽을끼라요."
석 달째 매주 할머니를 방문해 상담해온 유순자(69)씨가 "우시느라 아예 말씀도 못 하던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불안정하다"고 했다. 고독, 당뇨, 가정 불화 등 자살 충동의 원인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탓이다. 최성환 한화생명은퇴연구소장은 "70대 이상 한국인은 '가족'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세대"라고 했다. 2남 1녀는 할머니가 '분가'했다고 여기지만, 할머니는 "이기 고려장이지 뭐꼬" 했다. 자식이 괘씸하다면서 "마지막 소원은 아들내미랑 같이 살다 가는 거"라고 했다. "다시 함께 살자"는 자식이 없어 펑펑 우는 할머니를, 건너편 경대에 붙은 가족사진 속 손자가 멀뚱멀뚱 바라봤다.
입력 : 2013.11.13 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