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風磬)
―이태수 (1947∼ )
바람은 풍경을 흔들어 댑니다
풍경 소리는 하늘 아래 퍼져 나갑니다
그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속마음의 그윽한 적막을 알 리 없습니다
바람은 끊임없이 나를 흔듭니다
흔들릴수록 자꾸만 어두워져 버립니다
어둡고 아플수록 풍경은
맑고 밝은 소리를 길어 나릅니다
비워도 비워 내도 채워지는 나는
아픔과 어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두워질수록 명징하게 울리는 풍경은
아마도 모든 걸 다 비워 내서 그런가 봅니다

어둡고 아픈 마음과 맑고 밝은 풍경 소리를 흑과 백처럼 명백한 대비로 그려낸, 풍경(風磬) 소리가 들려오는 풍경(風景)이다.
풍경은 바람에 흔들리며 ‘맑고 밝은 소리를 길어’ 나르는데, 그 바람 속에서 시인의 가슴은 점점 어두워진다. 어두운 가슴에 풍경 소리는 더욱 낭랑히 울리고, 오, 풍경이여, ‘모든 걸 다 비워 낸’ ‘그윽한 적막’이여. 나도 나를 비우면 아픔도 어둠도 없으련만. 그런데 내 무엇을 비워야 할까? 그리움? 외로움? 억울함? 욕심? 꿈? 과거? 미래?
바람 부는 날, 심사가 어지러운 시인의 풍경에 대한 동경이 맑고 깊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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