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다고 한숨 쉬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만 편들지 않지. 꿈은 공평하게 꿀 수 있는 거야. 괴로운 일이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지. 그러니 당신도 좌절하지 마.’

올해 6월에 만 100세를 맞이하는 평범한 할머니가 지은 시집 <좌절하지 마>(한국어 번역본 이름은 <약해지지 마>)가 발매 10개월 만에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메이지 시대(1911년)에 도치기 현(도쿄의 북부 지방)에서 태어난 시바타 도요.

   
좌절하지 마
시바타 도요는 본래 돈 많은 미곡상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려서 가세가 기울자 요릿집에 먹고 자는 더부살이로 들어갔다. 거기서 만난 요리사와 서른네 살에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었다. 21년 전 남편이 죽자 그는 향리 우쓰노미야 시에서 ‘독거노인’으로 혼자 생활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요는 허리를 다쳐 소일 삼아 하던 일본 무용을 그만두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먼 산만 쳐다보는 도요를 보다 못해 하나뿐인 아들이 시를 써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아흔세 살이 되던 해, <산케이신문>의 독자 투고란 ‘아침의 시’에 자작시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중년·노년 세대의 우상으로 떠올라


<산케이신문>에 투고한 시를 모아 2009년 10월에 자비출판한 시집이 바로 <좌절하지 마>이다. 처음엔 한정 3000부였다. 그러나 아흔여덟 살 할머니가 시집을 냈다는 소식이 입소문으로 퍼지자 4개월 만에 1만 부를 돌파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러자 ‘아스카신사’라는 출판사가 다시 지난해 3월 시집 내용을 일부 보완해 재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전문 시인이 낸 시집도 3000부 팔리는 게 고작인 일본 출판계에서 단숨에 1만 부를 돌파한 시집이 나오자 NHK를 비롯한 각 라디오 방송, 그리고 민간 텔레비전 방송, 여성지 등이 앞다퉈 도요의 시집을 소개했다. 이에 힘입어 <좌절하지 마>는 지난해 문예 부문에서 90만 부를 돌파하는 베스트셀러로 등장했다.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다음가는 판매 부수다.

‘아흔여덟 살이 돼도 사랑은 하는 거야. 물론 꿈도 꾸지. 구름도 타보고 싶고.’ 그의 시는 대체로 짧고 단순 명쾌하다. 그러나 도요의 시에 매료된 사람들은 “시의 행간에서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연륜이 묻어난다”라고 말한다.

주 독자층은 주로 중년 또는 나이 든 세대다.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현재 남자 78.56세, 여자 85.52세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944만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3.1%를 넘어섰다. 한 문학 평론가는 “일본이 초고령화 사회에 직면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100세 할머니 시인이 중·노년 세대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사회현상이다”라고 말한다.

   
올해 만 100세가 되는 시바타 도요의 첫 시집 <좌절하지 마>. 한국어 번역본은 <약해지지 마>이다.
정년을 맞이한 단카이(團塊:덩어리라는 뜻)  세대, 즉 1947∼1949년 ‘베이비 붐 시대’에 대거 태어난 세대도 도요의 열렬한 팬이다.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날 용기를 얻었다” “노후를 보내는 노하우를 깨달았다” “나도 지금부터 시나 소설에 도전해보고 싶다”. 출판사에 답지한 독자 편지는 현재 2만 통을 넘어섰다.

그는 지난해 자신의 시를 직접 낭독한 DVD 판을 낸 데 이어 올봄에는 도쿄에서 특별 행사를 개최한다. 또 만 100세가 되는 6월 무렵 두 번째 시집을 낼 예정이다. 하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그 바람이 꼭 성사된다는 보장은 없다.

‘조금 더 여기에 머물러 있겠어. 못다 한 일이 남아 있으니까.’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저 세상으로 가자는 주문처럼 들렸다는 도요가 망령을 떨쳐버리기 위해 지은 시다.

그는 현재 거동이 매우 불편한 상태다. 아침에는 손수 빵과 홍차를 끓여 마신다. 하지만 점심과 저녁은 ‘헬퍼(몸이 불편한 노인의 가정에 파견되어 신변을 돌보아주는 사람)’가 와서 차려준다. 몸치장도 그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래도 도요는 항상 노트와 볼펜을 머리맡에 두고 산다. 착상이 떠오를 때마다 수시로 메모해놓기 위해서다. 그는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보잘것없는 내 시집이 100만 부를 돌파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내 시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격려를 받은 것은 오히려 내 쪽입니다”라며 독자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AP Photo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23.1%에 달한다. 그런 까닭에 어디에서나 노인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역대 최고령 나이(89세)로 2007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여류 작가 도리스 레싱도 도요와 비슷한 연대인 1919년에 태어났다. 도리스의 대표작 <좋은 이웃의 일기(The Diaries of a Good Neighbor· 1984)는 우연한 기회에 아흔 살을 넘긴 이웃 할머니를 돌보게 된 여성 패션 잡지의 부편집장에 관한 얘기다.

‘제2 인생’에 도전하라는 메시지


어머니와 남편을 암으로 잃은 잔느는 두 사람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죄책감을 씻기 위해 이웃 노인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잔느의 호기심을 끈 사람은 매사에 까다롭고 콧대가 높은 90대 할머니 모디였다. 모디는 ‘헬퍼’의 시중도 거부하는 완고한 할머니였다.

잔느 역시 처음에는 노인 냄새 진동하는 모디 방에 들어가는 것도 역겨웠다. 그러나 모디가 자신에게 마음을 허락한 것을 알고 헌신적으로 모디의 시중을 든다. 잔느는 그러면서 인생의 황혼과 노추(老醜)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일본에서도 50대와 60대 남성 가운데 4명 중 한 명은 혼자 사는 ‘1인 세대’다. 도쿄 23구 안에서는 매일 평균 독거노인 10명이 고독하게 죽어간다. 고독사한 독거노인이 몇 년 후 미라로 발견되는 일도 허다하다.

‘2020년 문제’와 ‘2030년 문제’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 600만명에 달하는 단카이 세대가 대거 사망한다. 이 시기에는 연간 사망자가 출생자의 두 배에 달하는 15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2030년대에는 1인 세대가 전체 세대의 25%에 이를 전망이다.

이처럼 심각한 노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에서 100살 된 할머니 시인이 혜성처럼 나타난 것은 분명 신선한 충격이다. 인생의 황혼을 맞이한, 또 맞이하는 수많은 일본인에게 노추를 훌훌 떨어버리고 과감히 ‘제2의 인생’에 도전하라는 밝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