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0 희망로드 대장정'] 아이들 손에 책 대신 낫·망치가…딜리(동티모르)=

푸른물 2010. 10. 21. 18:47

'2010 희망로드 대장정'] 아이들 손에 책 대신 낫·망치가…

  • 싸이월드 공감
  • 잇글링
  • 트위터로 보내기
  • MSN 메신저 보내기
  • 네이트 뉴스알리미
  • 뉴스젯
  • RSS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스크랩하기
  • 블로그담기
  • 기사목록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입력 : 2010.10.21 03:01

[6·25 60주년 기획… 지원 절실한 6·25 원조국·최빈국 10개국을 가다] [7] 동티모르
독립전쟁 동안 나라 초토화… 아버지와 생이별 가정 많아, 아이들도 돈벌이 해야 생계

지난 8월 27일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서쪽으로 20㎞ 떨어진 리퀴사주(州) 마자르떼떼(Mazartete) 마을 뒷산에서 도밍가스(16)양이 팔뚝만 한 카타나(catana·낫 모양의 칼)를 휘두르며 카사바(cassava·익혀 먹을 수 있는 작물)를 캐고 있었다. 도밍가스양은 "어머니는 나이가 많고 동생은 아직 어리다"며 "혼자 일하는 게 힘들지만 용기를 내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동티모르 독립운동 때 인도네시아 편에 섰다가 동티모르가 독립한 1999년 가족 모두를 데리고 인도네시아령(領) 서티모르로 도망쳤다. 2002년 도밍가스양과 동생, 어머니는 동티모르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아직 서티모르에 머물러 있다. 고된 커피 농사와 카사바 수확, 청소와 요리 등 일은 모두 도밍가스양 몫이다. 하지만 도밍가스양은 방 벽에 학교에서 나눠 준 테툼어(Tetum語·포르투갈어와 더불어 동티모르 공용어) 교재를 붙여놓고 틈날 때마다 공부한다. "힘들어도 매일 학교에 가서 공부해요. 돈 벌어서 서티모르에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같이 살고 싶거든요."

동티모르 시카 마을에 사는 형제 아니세또(가운데)군과 조니(왼쪽)군이 쪼그리고 앉아 돌덩이를 망치로 내리치고 있다. 형제는 작게 깬 돌을 공사장에 팔아 책과 학용품을 마련한다. /박진영 기자

동남아시아 섬나라 동티모르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해 뜨는 티모르(Timor Lorosa'e)'라고 부른다. 그러나 티모르의 역사는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1524년부터 1975년까지 250여년 동안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티모르섬은 무장 독립투쟁에서 승리해 독립했으나 곧바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무력 침공한 인도네시아에 또 점령당했다. 대(對) 포르투갈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프레틸린(Fretilin·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은 다시 독립을 위해 총을 들었지만, 동티모르 사람들은 1999년 독립할 때까지 25년 동안 식민 통치를 감내해야 했다. 1999년 8월 30일 UN 감시하에 주민의 95%(45만명)가 참여한 동티모르 주민투표에서 전체의 78.5%가 독립에 찬성했다. 하지만 투표 결과에 불복한 인도네시아군(軍)과 인도네시아군 측 민병대는 방화와 학살을 저질렀다.

2002년 5월 20일 동티모르는 완전히 독립했지만 기나긴 전쟁으로 나라의 기간시설은 모두 파괴됐다. 인도네시아 편을 들다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도밍가스양 아버지처럼 반목의 역사가 남긴 상처는 여전하다.

같은 날 라우뗌주 로스팔로스시(市)에서 만난 로베르또(Roberto·14)군 아버지 역시 인도네시아군을 돕다가 1999년 가족들을 버리고 홀로 서티모르로 갔다. 그때 어머니 알다(Alda·39)씨는 동생 조세피나(Josefina·10)를 임신 중이었다. 세 가족은 알다씨가 구멍가게를 해서 버는 돈으로 근근이 살고 있다. 로베르또군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 안 청소를 하고, 옆집에서 키우는 소 꼴을 대신 베어다 주며 어머니를 돕는다. 로베르또군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얻어 가족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라우뗌주 시카(Sika) 마을에 사는 형제 아니세또(Aniseto·15)군과 조니(Joni·12)군은 고무 타이어 조각으로 돌덩이를 감싸고 망치를 내리쳐 돌을 깨고 있었다. 형제는 작게 깬 돌을 공사장에 팔아, 책과 학용품을 산다. 형 아니세또군은 "좋은 옷을 입고 용돈을 많이 받는 친구들이 부럽고, 돌 깨는 일이 힘들고 부끄러울 때도 있다"며 "하지만 나에게는 가족과 집이 있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먹을 밥과 입을 옷이 있어 행복한 편"이라고 말했다. 두 형제의 장래희망은 나라를 지키는 군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수도 딜리에 있는 구스마웅 도서관의 사서 안토니오 디오스(Dios· 27)씨는 "이곳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길에서 놀거나 돈을 벌기 바빠 도서관을 찾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책을 읽고 공부하면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기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어린이재단과 함께하는 희망로드 대장정 동티모르편은 23일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방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