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미혼모 아기 2000명 받아낸 민병열 산부인과 원장
"지금까지 죽이는 일 했으니 앞으로는 살리는 일만 해라"
신부님 협박아닌 협박에 시작 저소득층 시험관시술도 도와 '임산부의 날' 대통령 표창 받아
"아기가 잘 듣고, 잘 보나요? 건강한 거죠?"지난 20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민병열산부인과병원 진료실에서 이날 오전 부모가 된 고등학교 2학년 김주영(가명·17)군과 고등학교 3학년 김미주(가명·18)양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아기 상태를 물었다. 민병열(63) 원장은 "아기 몸무게가 4.6㎏이나 되네. 아기는 건강하니 걱정 말고 산모 몸이나 잘 풀어요"라고 안심시켰다. 김양이 "아기를 입양 보내지 않고 (김군과) 함께 살면서 키워보겠다"고 하자 민씨가 "살 집도 없고, 돈벌이도 쉽지 않을 텐데…. 일단 자모원에 들어가 있으면서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 ▲ 지난 20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의 산부인과 원장 민병열씨가 진료실에 앉아 지난 20년간 미혼모 출산을 돕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민씨는 지난 10일‘임산부의 날’을 맞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민씨는 "9년 전쯤 일인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여고생이 있다"고 했다. 자주 가출하던 여고생이었는데 6개월이 되도록 임신 사실을 모르다 뒤늦게 어머니 손에 끌려 자모원에 왔다고 한다. 민씨는 "젊은 나이에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가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던 어머니가 딸의 중절 수술을 극구 반대했다"고 말했다. 딸은 아이를 지우겠다며 자모원을 도망쳐 나갔고 다시 어머니 손에 붙들려 자모원에 돌아오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고 한다. "그 여고생이 낙태 수술하러 다른 산부인과에 가면 학생 어머니가 나에게 전화해서 알려줬어요. 그러면 나는 그 산부인과에 전화해서 '보호자 동의가 없으니 수술하지 마라. 수술하면 고발하겠다'고 말하곤 했지요." 민씨는 "한 의사가 '당신이 뭔데 방해하느냐, 당신도 중절 수술을 한 적 있지 않으냐'고 소리지르더라"며 "그날 그 의사로부터 '위선자'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여고생은 아기를 낳았고, 낳자마자 민씨와 어머니에게 고맙다며 엉엉 울었다고 했다. 민씨는 "그때 이후로 미혼모를 돕는 일이 잘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민씨는 대학생·교사·스튜어디스 등 다양한 미혼모들을 만났다. 민씨는 미혼모들이 죄인처럼 취급받는 현실이 문제라고 했다. 민씨는 "미혼모들이 찾아오면 '당신이 잘못한 일이 아니니 자책하지 마라'고 말해준다"며 "처음엔 두려움에 떨다가도 막상 아기를 낳고 나면 책임감이 생겨서인지 더 열심히 살더라"고 했다. 미혼모로 아기를 낳았던 한 여성으로부터 최근 선생님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아이 낳을 때 고등학교를 자퇴했었는데, 아기를 낳고 나서 교육대학까지 마치고 사회인으로 잘 성장했다는 말을 들으니 뿌듯했다"고 말했다.
민씨는 얼마 전부터 한 시민단체와 손잡고 아기를 갖지 못하는 난임(難姙)으로 고통받는 저소득층 부부의 시험관 아기 시술을 돕는 일도 하고 있다. 민씨는 "시술비용이 1회에 150만원으로 꽤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부부들이 많다"며 "가난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들의 고통도 덜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민씨는 '임산부의 날'이었던 지난 10일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민씨는 "보건소에서 찾아와서 저에게 지금까지 한 일을 적어보라기에 적어 드렸는데 이런 엄청난 상을 받았다"며 쑥스러워했다.
"난 정말 한 거 없어요. 뭐, 애야 그냥 받으면 되는 거지. 힘쓰는 건 내가 아니라 산모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