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화

길 위의 인문학] 강릉 탐방… 이무기처럼 살다 간 허균… 그 恨서린 바다강

푸른물 2010. 10. 26. 04:38

길 위의 인문학] 강릉 탐방… 이무기처럼 살다 간 허균… 그 恨서린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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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24 23:17

"획일적 전통 거부한 지식인
'시대의 이단아'로 낙인찍혀…
손위 누이인 허난설헌도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난 罪詩로 한탄하다 져버린 꽃"

신사임당(申師任堂)은 강릉 오죽헌에서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 1584)를 임신했을 때 용꿈을 꿨다. 오죽헌에 가면 신사임당이 태몽을 꿨다는 '몽룡실(夢龍室)'이 있다. 이이는 태몽에 걸맞게 나중에 조선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정치가로 우뚝 섰다.

이이보다 한 세대 늦게 강릉에서 태어난 인물은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이다. 교산은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처럼 생긴 산'을 뜻한다. 허균은 교룡(蛟龍)이 구멍을 뚫고 올라갔다는 강릉 앞바다 바위에 얽힌 전설에서 호를 따왔다.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을 통해 반체제 지식인과 민중의 이상향을 그렸던 허균은 유교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채 불교와 도교에도 심취한 자유분방한 지식인이었지만, 한 시대의 이단아로 낙인찍힌 끝에 결국 역적으로 몰려 처형됐다. 뜻을 이루지 못한 허균의 운명은 용이 못 된 이무기와 같았다.

허균의 손위 누이는 26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다. 역시 강릉에서 태어난 그녀는 현대의 시각으로 봐도 감성적이고 세련된 언어로 시를 남겼지만 남녀 차별의 굴레에 갇혀 괴로워하다가 일찍 진 꽃이 됐다. 허균이 죽은 누이의 시를 문집으로 남겨 중국 사신에게 전해준 덕분에 그녀의 시는 당시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

23일 강원도 강릉 일대의 역사·문화 현장을 둘러본‘길 위의 인문학’탐방단이 경포대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들은 역사학자 이이화, 소설가 김도연씨와 함께 이이·신사임당 모자, 허균·허난설헌 남매 등의 유적지를 둘러봤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조선일보·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가 공동주최하고, 문학사랑·한국도서관협회·대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길 위의 인문학' 10월 두 번째 탐방은 '우리 인문학을 빛낸 선현(先賢)을 만나다'란 주제로 23일 강원도 강릉에서 열렸다. '허균의 생각'을 쓴 역사학자 이이화씨와 대관령에 사는 소설가 김도연씨가 초빙 강사로 나선 이날 탐방에는 70여명이 참석해 오죽헌~선교장~경포대~허균·허난설헌 기념관~교문암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갔다.

먼저 오죽헌을 둘러본 탐방객들은 신사임당 모자가 살아있을 적에 매만졌을 수령(樹齡) 600년짜리 배롱나무를 바라보면서 감탄했다. 이이화씨는 허균 전문가답게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앞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어떤 이는 허균이 서자(庶子)라서 홍길동전을 썼다고 하는데, 허균의 아버지는 본처와 사별한 뒤 후처를 맞아 허균과 허난설헌을 낳았으니 서자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허균 남매는 서자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시인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우면서 '비애에 젖은 시'를 익혔다고 한다. 그런 영향 때문에 허균은 서자, 불우한 문사, 하급 벼슬아치, 승려, 화가처럼 소외된 사람들과 주로 어울렸다. 이씨는 "유교에서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강조했지만, 허균은 '천고귀금(賤古貴今·옛것은 천하고 지금 것이 귀하다)'이란 말을 썼다"며 "획일적 전통을 거부한 허균은 인권과 창의성을 추구했던 영원한 젊은이였다"고 강조했다.

이이화씨는 "옛날 여학교에서는 현모양처(賢母良妻)에 대한 강의를 부탁했지만, 요즘에는 황진이와 허난설헌 강의를 요청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허난설헌의 세 가지 한(恨)은 조선에서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한 남자의 아내로 태어난 것이었다"며 "그녀의 시는 감상이 아니라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시대 속에 억눌렸던 여인의 내면 고통이 담겨 있기에 훌륭한 문학"이라고 했다. "황진이가 그냥 기생이 아니라 평등사상을 지녔던 시인이었듯이, 허난설헌의 시는 감상이 아니라 이상(理想)을 노래한 것"이란 얘기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탐방객 김정탁씨(70)는 "일정이 너무 빡빡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해 아쉽지만, 허균과 허난설헌을 재발견했다"고 했다.

11월 초 개봉할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김도연씨는 "대관령 너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강릉과 집 사이를 오가며 살아왔다"면서 달 이야기를 했다. 강릉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밤에 대관령에 뜬 달 이야기였다. 당시는 취직도 등단도 안 돼 외롭고 힘든 시절이었다. 강릉을 빠져나온 버스가 대관령 고갯길로 접어들었을 때 보름달이 차창까지 다가와 그의 젖은 눈을 어루만져 줬다. 김씨는 탐방객들과 헤어지면서 "오늘밤 보름달이 뜰 것"이라며 "여러분들이 탄 버스를 따라올 보름달을 하나씩 갖고 가시라"고 했다. 이날 밤 달은 탐방객이 탄 고속버스가 달릴 때는 헐레벌떡 따라오다가, 길이 막힐 때는 구름 속에 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