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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유머로 위선투성이 세상을 꾸짖다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푸른물 2010. 10. 13. 04:57

날카로운 유머로 위선투성이 세상을 꾸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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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08 01:56

'2010 노벨문학상' 페루 소설가 바르가스 요사
군사학교 중퇴 후 16세에 데뷔… 홍등가 배경 '녹색의 집'으로 문학상 휩쓸며 세계적 명성
군사정권 총리직 거부해 갈채… 1990년 大選에 출마하기도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는 1936년 3월 남미 페루의 아레키파에서 태어났다. 2세 때 외교관인 할아버지를 따라 볼리비아로 갔다가 9세에 귀국해 수도원 부설 학교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고, 1950년 리마의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학교에 입학했지만 2년 뒤 중퇴했다. 이어 산 미구엘 대학을 졸업한 뒤 페루의 리마스페인마드리드에서 법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마드리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르가스 요사는 군사학교 중퇴 직후인 1952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했고, 1963년 '도시의 개들(La Ciudad y los Perros)'을 발표하며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어 홍등가를 배경으로 쓴 '녹색의 집'(1966)으로 페루 국가 소설상, 스페인 비평상,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지난달 13일 프랑스 파리 메종 드 라메리크 라틴에서 열린‘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자유와 생(生)’전시회에 참석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바르가스 요사가 인물을 실제보다 살찐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인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 옆에 서 있다. /AFP 연합뉴스

바르가스 요사는 라틴아메리카의 저항문학을 대표하면서도 해학과 풍자로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해온 작가다. 출세작인 '도시의 개들'은 군사학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시험지 유출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학내 사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학교의 대응방식을 통해 인간 사회의 위선을 꼬집고 기성세대의 도덕적 허위의식을 비판했다. 이 소설은 당시 페루 정치를 풍자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반발하는 학교에 의해 책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페루를 대표하는 작가로 유명해진 바르가스 요사는 이후 여러 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각종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유럽과 미주를 돌아다녔다. 파리에서는 스페인어 교사와 방송인, 언론인으로 활동했고, 유럽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초빙교수를 지냈다. 해외 체류 중에도 소설과 에세이 등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198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정치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던 바르가스 요사는 1990년 페루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배했다.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완벽한 독재 체제'라는 발언이 문제가 돼 추방당했고, 1980년대 중반에는 페루 군사 정권이 제의한 총리직을 거부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바르가스 요사는 1994년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미국의 '포린 폴리시'와 영국의 '프로스펙스' 잡지가 함께 뽑은 '세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명'에 선정됐다. 그는 사실적인 서사와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 치밀한 구성으로 소설 읽는 재미를 선사하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풍부한 유머와 날카로운 위트, 다채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며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1973),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1977), '세상 종말 전쟁'(1981), '새엄마 찬양'(1988),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1997), '염소의 축제'(2000), '나쁜 소녀의 짓궂음'(2006) 등의 소설과 에세이 '혁명의 문학과 문학의 혁명'(1970), '사르트르와 카뮈'(1981), 대통령 선거전을 회고하는 자서전 '물속의 물고기'(1993) 등이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우리말로 번역됐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 세계]

다문화사회처럼 뒤얽힌 복층구조… 퍼즐조각 맞추듯 읽는 재미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멕시코의 카를로스 푸엔테스와 더불어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바르가스 요사의 문학적·정치적 입장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소설가로서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까지 그는 사르트르와 카뮈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와 쿠바 혁명을 옹호했다. '도시와 개들' '녹색의 집' '카데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등 작품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그러나 1970년대 초에 쿠바혁명에 회의를 느끼면서 그의 입장은 완전히 바뀌었고, 1970년대 후반부터는 신자유주의 경제사상과 자유시장 경제를 지지한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는 전환기의 작품이라고 평가되며, '세상 종말 전쟁' 이후의 작품은 신자유주의 단계를 잘 보여준다. 2000년에 들어 출판한 '염소의 축제'는 도미니카의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의 잔학상을 다루면서 초기의 강한 사회 비판적 성향으로 회귀한다. 그리고 2006년에 발표한 '나쁜 여자'는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를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정치적 상황에 맞게 다시 쓴 작품이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문학관은 바뀌지만, 그의 작품에는 공통적인 요인들이 있다. 우선 문학기법을 살펴보면 바르가스 요사는 역동적인 문학 기법을 발전시킨 포크너와 플로베르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으며, 거기에 19세기 리얼리즘의 특징을 결합시킨다. 그래서 다양한 관점, 내면 독백, 내면적 대화와 같은 기법을 사용하고, 이와 더불어 몽타주 효과, 비연속적이고 파편화되거나 서로 뒤얽힌 복층구조를 구사한다. 그렇기에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읽어나가면서 독서의 기쁨을 한껏 즐길 수 있다.

브라질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세계 종말 전쟁' 같은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페루 사회는 항상 '바르가스 요사 문학'세계의 중심을 이룬다. 페루는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다문화사회이다. 그곳에는 지배층인 백인 계급과 케추아 원주민 말을 사용하는 대다수의 국민 외에도 소수의 아시아계, 흑인, 아마존 원주민도 있다. 인종적 다양성은 해안의 사막지대, 안데스산맥지대, 아마존 밀림이라는 지리적 구성에 의해 더 복잡해진다. 한 나라 안에 이토록 다채로운 세계가 공존하지만, 페루의 정치기관은 허약하고 무능해서 이런 광범위한 차이를 대표할 능력이 없다. 바르가스 요사가 발표한 대부분의 소설은 이런 여러 세계가 서로 충돌하며 공존하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바르가스 요사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정치적 신념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한 작가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훌륭한 문학작품이란 정치적 의미를 띠어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절대적 자유의 산물이 될 때에 훌륭한 작품이 탄생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에서 정치는 재생되지 않고 재창조된다. 그의 소설은 현실을 모방하지 않고 수정함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 그렇게 그는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미래를 향한 창조적 가치를 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