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내 인생의 맛] 난 '바다'를 먹고 자란 어촌 촌놈… 지금도 즐겨먹는 것? 담

푸른물 2010. 8. 22. 06:28

내 인생의 맛] 난 '바다'를 먹고 자란 어촌 촌놈… 지금도 즐겨먹는 것? 담백한 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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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8.18 03:13

[내 인생의 맛] '소나무' 사진가 배병우와 민어찜
어머니가 자주 해주던 음식 민어에 양념? 필요 없어
말렸다가 그냥 찌면 돼… 고향서 음식점 차릴 생각도

각계 명사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간절한 맛을 풀어내는 '내 인생의 맛'. 아홉 번째 주인공은 '소나무' 사진가 배병우입니다. 민어찜에 대한 추억을 나눈 인터뷰를 이야기하듯 독자들께 들려드립니다.

나는 여수에서 태어난 어촌 촌놈이야. 40년 동안 사진에 미쳐서 빛과 바람 속을 떠돌았지. 소나무 작가로 알려졌지만 난 본능적으로 바다가 좋아. 소나무가 아버지라면 바다는 어머니지. 내게 바다는 고향 같아. 바라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거든.

소나무에 꽂힌 건 1984년인데, 그 후로 매일 아침 일어나 소나무 찍으러 다녔어. 하루도 어김없이. 난 낮에는 안 찍거든. 낮의 광선은 재미없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버릇은 아버지한테서 배운 것이기도 해. 어부였던 아버지는 날마다 새벽 3시면 일어나셨지. 생선 경매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동도 트기 전에 새벽 어시장에 가셨어. 생선 못 팔면 배 곯을 자식이 일곱이나 됐으니까. 아버지께서 매일 아침 그날 잡은 생선 중 제일 좋은 놈을 집으로 보내줬어. 그놈을 두고 밥상머리에서 7남매가 전쟁을 벌였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배병우는 소문난 미식가요, 요리사다. 지난 13일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의 작업실에서 직접 만든 민어찜을 앞에 두고 사진과 음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건수 객원 기자 kimkahns@chosun.com
집이 바닷가였어. 봄이 지나면 낚싯대 들고 바다로 나가서 실컷 잡아먹었어. 얼마 전 뉴스에 보니까 지난 50년 동안 플랑크톤이 40% 사라졌다고 하더군. 나 어렸을 때는 바다에 반짝반짝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별처럼 빛났어. 지금은 볼 수가 없지. 먹이 사슬이 깨졌으니까. 가난했던 시절이지만, 바닷가에 살면 굶어죽지 않았어. 갯벌에는 꼬막이 있고 모래에는 조개가 있고. '찔피'라고 청정수에만 자라는 해초도 무시로 뜯어먹었지.

그렇게 '바다'를 먹고 자란 내가 지금도 꼭 챙겨 먹는 녀석이 민어야. 늦봄에 여수에서 민어를 사서 냉동고에 50마리쯤 넣어놔. 한 마리씩 꺼내서 찜으로 자주 먹어. 내가 요리를 좀 하거든. 찜통에다가 무만 넣고 쪄. 간장하고 마늘 넣고 기본 소스를 만들어서 살짝 뿌려 먹지.

민어찜은 어머니가 자주 해주신 거야. 요리를 잘하셨어. 7남매 옷을 다 만들어 입히셨어.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뛰어나셨지. 그걸 나도 물려받은 것 같기도 해. 어렸을 때부터 시키지 않아도 밥 해먹고 이스트 사다가 빵도 해먹었어. 있는 것 갖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게 좋았어.

여수고등학교 졸업하고 1969년에 서울 올라와 자취했는데 그게 내 요리 인생의 시작이지. 장바구니 들고 시장도 직접 봤어. 홍익대 미대를 다니며 셋방을 옮겨다녔는데, 지금 현대백화점 자리 신촌시장을 자주 갔어. 내 세대에는 부엌에 들어간 남자 별로 없지. 당연히 아줌마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지.

얼마 전에 유명하다는 민어찜 음식점에 갔는데 고춧가루하고 설탕, 온갖 양념을 잔뜩 뿌려서 주더라고. 요즘 사람들이 달고 짠 거에 익숙하니까 그 입맛에 맞춘 거겠지. 하지만 민어 맛은 그게 아냐. 양념? 레시피? 그런 거 필요 없어. 민어 맛을 살리려면 바닷물에 씻어서 말렸다가 그냥 찌면 돼. 그러면 거기서 맛의 본질이 나오지. 순수한 담백함이야. 이건 농어하고도 달라. 농어는 그냥 담백하기만 한데 민어는 풍미가 깃들어 있어. 그게 바로 맛이 주는 본질적인 경지지.

배병우가 만든 민어찜
내가 소나무 한 그루를 사방팔방에서 돌아가며 찍고, 계절과 시간을 달리해서 찍는 것도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한 거야. 사진은 렌즈로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고, 요리는 혀끝으로 맛의 본질을 잡아내지. 결국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건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리고 본질은 하나야. 하나를 추구하다 보면 경지에 이를 수 있어. 내가 인정받게 된 것도 수십년간 같은 주제를 찍으면서 이룩한 경지 때문이지. 음식도 마찬가지야. 정말 잘하는 집은 냉면이면 냉면, 삼계탕이면 삼계탕만 하지 않나. 본질에는 분칠이 필요 없어. 식재료만 좋으면 기교나 군더더기 없이도 본연의 맛이 나오는 거지. 생선구이에 무슨 기술이 필요하겠어. 시간 맞춰 구워서 소금 뿌리면 끝이지. 하지만 그 간단한 구이가 주는 맛의 경지란 얼마나 오묘한가.

나중에 고향에 내려가서 음식점을 하고 싶어. 건물도 내가 사서. 여수 재료를 여수 레시피로 요리해서 내놓는 거야. 가게는 열고 싶을 때만 열고. 불친절하다고? 그럼 날짜를 정해주면 되지. 맛있으면 와서 안 먹고 배기나. 맛있는 거 먹으면 행복하잖아. 나는 내가 만든 요리 먹어도 행복해. 만들면서 즐겁고 먹으면서 행복하고. 그것이 또한 인생의 본질이 아닐까.


●배병우는

1950년 여수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거쳐 홍익대 대학원 공예도안과를 졸업했다. 현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소나무 작가로 유명하다. 2005년 가수 엘튼 존이 그의 소나무 사진(에디션 넘버3)을 1만5000파운드(당시 2700만원)에 사들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듬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같은 소나무 사진(에디션 넘버2)이 4만8000달러(당시 4800만원)에 팔렸다. 지난 6월 종묘, 창덕궁, 알람브라궁전 등을 촬영한 사진을 모아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컬처북스)을 냈다.


●민어는… 조기와 비슷, 크기는 4~5배 구이·포·국 등 두루 어울려

민어(民魚)는 백성의 물고기라는 뜻이다. 실제로는 ‘삼복에 양반은 민어탕, 상놈은 보신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임금이나 사대부 계층이 즐겨 먹었다.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몸은 약간 둥글며 빛깔은 황백색이고 등은 청흑색이다. 맛은 담담하고 좋다. 젓갈이나 어포가 모두 맛이 있다’고 기록했다. 실학자 서유구(1764~1845)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서남해에서 나며 동해에는 없고 모양이 조기와 유사하나 그 크기가 4~5배에 달한다’고 적었다.

7~9월 산란기를 앞두고 기름이 오르는 6월부터 제맛이 난다. 회로 먹을 때는 씹는 맛을 즐기기 위해 결을 따라 두툼하게 썰어 먹는다.

담백한 민어찜은 예로부터 도미찜보다 귀하게 여겼다. 내장을 넣고 끓인 민어탕은 고소한 맛까지 더해 ‘탕중왕(湯中王)’으로 불린다.

머리부터 꽁지까지 버릴 것이 없다. 구이, 장국, 포, 찌개, 국, 조림 등으로 두루 해먹는다. 젤라틴이 풍부한 부레는 씹을수록 고소하다. 부레는 말렸다가 풀로 만들어 접착제로도 썼다. ‘이 풀 저 풀 다 둘러도 민어풀이 따로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가는 풀로 쳤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서는 민어가 부레를 부풀려 내는 요란한 소리 때문에 ‘한여름 민어 떼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흔한 생선이었으나, 최근에는 어획량이 줄어 자연산 민어는 귀하고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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