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필리핀 노병 찾아 60년 만에 ‘보은 치료’ [중앙일보] 기사

푸른물 2010. 8. 7. 05:09

필리핀 노병 찾아 60년 만에 ‘보은 치료’ [중앙일보]

2010.07.28 00:22 입력 / 2010.07.28 09:07 수정

진료캠프 연 한방의료봉사단

19일 오전 9시 진료가 시작됐다. 4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의 빌리아모얼 공군 골프장 강당 앞에는 순식간에 환자들이 길게 줄을 섰다.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komsta)이 의료봉사를 펼치는 현장이었다. 환자들은 마닐라 외곽 파사이 지역 주민이 대부분이었다.

잠시 후 강당 안으로 20여 명의 노인이 들어왔다. 한국 의료진이 거수경례를 하자 이들도 거수경례로 화답했다. 차림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늘색 조끼에 베레모를 썼다. 여러 개의 훈장을 단 사람도 눈에 띄었다. 바로 한국전 참전용사협회(PEFTOK) 소속 회원들이다. 조끼 위에는 태극기와 필리핀 국기가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파병돼 치열한 전투를 벌인 이들은 진료실 정면에 걸린 태극기와 필리핀 국기를 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원욱 진료단장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바토롬 카톨로(오른쪽)의 무릎에 침을 놓고 있다. 카톨로는 “폐허였던 한국이 이제는 선진국이 돼 필리핀으로 의료봉사를 온 게 믿기지 않는다”며 감격했다.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 제공]
환자들은 주로 관절염과 고혈압·변비를 호소했다. 한의사 5명은 침을 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물리치료를 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한약재로 1~2주일치 약을 처방했다. 기력 감퇴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 보약(보중익기탕)을 선물했다.

이날 봉사는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이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하고 싶다고 필리핀 교민회에 요청해 성사됐다. 조브누오 도밍구에즈(79)는 고혈압과 감기 치료를 받았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19세의 나이에 상병으로 참전해 철원에서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포격 충격 때문에 오른쪽 청력을 상실해 귀국 후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힘들었다고 했다. 도밍구에즈는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서 내 희생이 작은 도움이 됐다는 생각을 하면 그저 고맙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춘천·양구 전투를 치른 바토롬 카톨로(82)는 “전쟁 당시 폐허였던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한국 정부와 국민이 필리핀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의료진은 19일과 20일 이틀간 참전용사 30여 명을 진료했다. 필리핀은 한국전쟁 당시 7400여 명을 파병했다. 이 중 116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는 299명이었다.

참전용사협회 회원 수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지만 공식 행사 때면 최대 100명 정도가 모인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19~30세이던 청년들이 이제는 79~90세가 됐다. 사망자가 늘면서 회원은 점차 줄고 있다. 대부분 마닐라 외곽의 재개발지역이나 케손시티 등지에서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원욱(경옥당한의원 원장) 진료단장은 “우리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참전용사들에게 진료를 통해 보은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