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망원시장 상인대학, 경영학 박사 등 전문가 초청… 백화점·마트와 경쟁법 배워
"참기름병 크기 줄이는 등 작은 변화의 힘 경험했지요"
지난 23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망원시장의 상인회 사무실에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40대 여성, 흰 고무신을 신고 땀을 닦으며 수업을 듣는 50대 남성 등 모두 물건을 팔다 온 상인들이다. 별도로 마련된 책상은 없지만 상인들은 의자에 앉은 채 교재를 무릎 위에 놓고 강의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점심시간 직후였지만 조는 사람은 없었다.이곳 '망원시장 상인대학'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2시간 동안 경영학 특강이 열린다. 지난달 23일 문을 연 상인대학에는 망원시장 83개 점포 가운데 60여명의 상인이 등록을 했다. 대학 개설 한 달째인 지금 40여명이 꼬박꼬박 출석한다. 상인대학 설립은 상인들이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추진해왔고,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진흥원에서 전액 지원을 받아 세워졌다. 수업료는 무료다. 오는 10월 8일까지 기본과정 10일과 심화과정 16일 코스로 진행된다. 수업일수의 80% 이상 출석해야 졸업장을 준다. 강의는 경영학 박사 학위가 있거나 실무 현장 경험이 5년 이상인 강사들이 맡는다. 망원시장 상인회장 김대용(67)씨는 "상인대학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에 빼앗긴 손님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라며 "마케팅과 친절교육 등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 열린 ‘상인대학’에 시장 상인 50여명이 모여 수업을 듣고 있다. 지난달 23일 문을 연 상인대학은 마케팅과 친절 교육 등 현장과 밀접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강의를 들으면서 상인들의 의식과 판매 방식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10년 넘게 깨를 파는 고종순(47)씨는 "이제는 시장도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상인대학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를 듣다 아이디어가 떠올라 지난 5일부터 참기름을 작은 병에 담아 팔기 시작했다. 그는 "큰 병에 담아서 팔 때도 잘 팔렸지만 작은 병에 파는 게 손님을 더 끌어들이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판매방식을 바꿔봤다"고 했다.
강의 내용을 실천해 매출을 올린 상인도 있다. 떡을 팔고 있는 최태규(50)씨는 얼마 전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최씨는 "투자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강의를 듣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홍보가 잘 됐는지 매출이 좀 늘었다"며 "돈을 좀 더 들여 포털에도 올리고 홈페이지도 개선하려 한다"고 말했다.
야채상을 하는 김은진(35)씨는 강의를 들은 이후 경영방식을 확 바꾸었다. 그는 "시장이라고 해서 싸게 팔 것이 아니라 품질 좋은 야채를 잘 구해서 제값 받고 팔다 보니 단골손님이 오히려 늘었다"며 "구입하는 야채를 깨끗이 닦아 전부 포장해서 파니 더 잘 팔려 재고도 없어졌다"고 했다.
경영컨설팅업체 대표 방용성씨(51)씨는 "상인대학이라고 해서 수업 분위기가 산만할 줄 알았는데 상인분들의 열성이 대단했다"며 "이런 열정이라면 조만간 마트나 백화점 못지않은 서비스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