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동서남북] 청와대 출입기자 2년 반을 마치고주용중 논설위원 midway@chosun

푸른물 2010. 7. 23. 04:41

동서남북] 청와대 출입기자 2년 반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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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7.21 23:03

주용중 논설위원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재작년 봄, 가까운 지인(知人)이 전화를 걸어왔다. "청와대 기사를 쓰는 게 네 일이지만 가급적 드라이(dry)하게 쓰는 게 좋겠다." 인기가 땅에 떨어진 대통령 기사를 쓰다가 도매금으로 취급당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지난 2년 5개월 동안 필자는 청와대를 출입하며 거의 매일 이명박 대통령 기사를 썼다. 대통령을 비판하기보다는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통령 인기의 높낮이에 따라 기사를 물렁하거나 뾰족하게 쓰지 않으려 다짐했지만 밖에선 또 다른 평가도 있었던 것 같다.

일반인보다는 대통령을 가까이 접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깨졌다. 우선 대통령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주의자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현대건설에서 초고속으로 샐러리맨 신화를 일궈낸데다 BBK와 도곡동 땅 의혹으로 시달린 대통령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대통령도 우리나라가 잘 되고 국민이 잘살기를 바라는 꿈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대통령이 되면 정말 애국자가 되는 모양이다. 외국에 나가면 한 건이라도 국내 기업들에 도움되는 일을 찾으려 애쓰는 게 눈에 보였다.

대통령이 권위주의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동안 여론조사 결과도 대개 그렇게 나왔고, 엊그제 만난 친구도 "대통령은 한마디로 꼰대 이미지"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의외로 주위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말실수는 대부분 파적(破寂·적적함을 면함)에 대한 의무감 같은 것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다. 앞장서서 서먹서먹함을 부드럽게 바꾸려 하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농담을 하다 오버를 하게 되는 식이다. 그 오버 부분만 똑 떼어놓으면 말실수가 된다. 사진기자들은 대통령이 시장에 가거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만날 때 살아 있는 표정이 나온다고 말한다. 그만큼 편해진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활동을 꺼린다는 것도 진실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 대통령이 비밀리에 독대한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여(與)도 있고, 야(野)도 있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작년 1월 비밀회동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지만, 한때는 박 전 대표에게 전화도 몇 차례 건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 정치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다.

이 대통령도 부족한 게 많다. 그 중 하나를 꼽자면 갈등 관리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최고 통치자 몫으로 돌려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가 갈등과 분쟁 해결이다. 나머지는 그냥 놔둬도 민간 부문이 알아서 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100% 아니면 0%, 승패가 분명한 삶을 살아왔다. 사회 갈등을 풀어가는 정치는 51%와 49%의 영역이다. 그만큼 여백이 필요하고 타협이 필요한데, 이 대통령은 수치로 재기 어려운 정치를 수치로 잴 수 있는 프로젝트처럼 여긴다.

"불도저인 줄 알았는데 소심하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요즘 주변에선 대통령을 좋게 말하는 사람보다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임기의 중간점을 넘어서면 민심은 더 차가워질 것이다.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서는 누구나 각자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은 세상이다.

이 대통령도 그렇게 소원하던 대운하세종시 수정을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단임 대통령이다. 그가 잘한다고 해서 임기를 연장할 수도 없고, 못한다고 해서 임기를 단축시킬 수도 없다. 어찌됐든 대한민국의 17대 대통령이다. "내년 말까지 큰 선거가 없으니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이 대통령이 '열심히'만이 아니라 '잘' 했으면 한다. 그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취재하던 입장에서 이제 대통령을 주로 비판하는 일을 맡으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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